[스페셜][중독전문가의 눈]즐거움에 대한 대가

누루커스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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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하면 떠오르는 건 즐거움이다. 목이 말라 물을 찾고 있던 내게 식탁에 담겨있던 보리차가 보였다. 단숨에 들이켜 마셨고 이내 이게 단순 보리차가 아님을 깨달았다. ‘퉤! 맛없어.’ 누구 하나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입에 머금고 있던 액체를 다 뱉어냈다. ‘아! 이게 술이구나.’ 내 첫 경험이었고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뱉어낸 술이 아깝게 느껴진 건 중학생이 된 이후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어떤걸 해야 우리의 우정을 증명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걸 해야 우리가 더 멋있어 보일거야. 이 우정이 더 끈끈해질거야 생각했다. 효과는 미비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게 행복했다. 술이 즐거움으로써 삶 속에 들어온 시간이었다.

 

  성인이 되니 술 없는 모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명이 밥 먹을 때는 어색해서 한 잔 마시고, 세 명이 있을 때는 심심해서 한 잔 마시고, 사람이 많아지면 우정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한 잔 마셨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술 한 잔에 뭘 그렇게 위하는게 많은지. 술의 힘을 빌려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선포하였다.

  내가 ‘알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게 이때쯤이었다. ‘내가 알코올 쓰레기라니...’ 술 많이 마실 수 있는게 능력이었던 시대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했다. 지인들은 신나게 마시고 있을 때, 찰랑거리는 술잔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몰래 술을 쏟아냈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속을 비우고 왔다. 웃고 떠들며 즐기는 대신에 벌게진 얼굴로 두통과 싸웠다. 술은 즐거움이라는 공식을 깨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웃었다.

 


  그럼에도 술이 주는 보상은 확실했다. 먼 타지에서 공부할 때 무료함과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500ml 맥주 한 캔이 좋았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오면 몸의 긴장은 풀리고 마음은 관대해졌다.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이불의 감촉도 좋고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을 찾아 반복했다.

  거기까지다. 나는 술과 더 친해지지 않을 수 있던 여러 요인을 가지고 있다. 유전적으로는 알코올 분해효소가 부족한 탓에 두통이 심했다. 집에서도 술 마시는 사람이 없었고, 술을 싫어하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친구들 또한 술 대신에 오렌지 주스를 시켜주었다. 중독학을 배우면서 중독에 대해 더 알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 남성은 술이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권유로 처음 마셨던 술에 대한 쓰디 쓴 첫 경험, 친구들과의 즐거움, 용기,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경험. 그가 노숙자라고 해도 그의 성장 과정에서 술이 주었던 추억은 나와 많이 다른 것이 아니다.

  서울역의 그에게 누가 삶의 유일한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할 것인가. 그럴 권리는 그 스스로만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술에게 받는 보상이 클수록 줘야 할 대가는 더 커진다.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개인과 사회 전반에 걸쳐 괴로움의 문제를 동반하는 주원인 또한 술이다. 즐겁기 위해서 마셨던 술에 중독되면 점차 술이 없는 삶은 고통이 되어버린다. 술 없이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재활센터에서 만난 전문직 여성은 술이 좋았다. 자신이 가진 무엇보다도.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자식도 걸림돌에 불과했다. 자신의 딸과 아들을 방에 가둬 놓고 술을 마셨다. 취한 채로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도 했다. 위기를 느낀 그녀는 스스로 재활센터로 찾아와 단주를 시작했다.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봤다. 술이 줬던 즐거움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그녀를 봤다.

 


  술은 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뇌에도 큰 영향을 준다. 혈관을 통해 뇌로 들어온 알코올은 혈관 벽을 통과해서 우리의 뇌를 조금씩 지워낸다. 기름 튄 식탁을 알코올로 닦아내듯. 우리의 뇌도 알코올에 녹아내린다. 말과 행동 그리고 기억도 함께 녹아내린다. 즐거움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술’하면 떠오르는 건 즐거움이다.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즐거움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대가를 계산하며 즐거움을 잘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누구나 조절에 실패할 수 있고, 조절에 실패하면 누구나 중독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술을 가장 잘 마시는 사람은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술을 조절하기 힘들다면, 술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면, 술이 고통이라면.

  당신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nurukers

 

http://www.kaacc.co.kr/03_sub/page3_2.php 

https://blutouch.net/facility/ad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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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김레인

보건학 박사. 알쓰. 중독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중독심리를 강의하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