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술을 다루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려본다. 정말이지 한국 전통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페어링이란 단어를 시리즈의 타이틀에 사용한 건 그래서 다행이다. Pairing이란 것 자체가 여러 가지 방식을 가능하게 하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제 #2이긴 하지만 이 시점에 이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왜 이렇게 우리는, 우리문화는 우리술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을까?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술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불과 110년 전인 1910년 무렵에는 조선 전체 가구의 1/7이 집에서 술을 제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양주 문화는 조선시대에 절정에 달했고 일제강점기 초반까지도 탁주 정도는 주막에서 손쉽게 만들어 잔술로 팔았다. 1909년 일제는 주세법을 도입했다. 해마다 11월까지 다음 해에 양조할 생산량을 세무서에 신고하고, 그 양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다.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 제조 면허를 내는 가구 수는 줄어들었고, 일제는 세금 징수가 용이한 양조장 단위로 주세를 엄격히 관리했다. 1934년에는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집 또는 소규모로 술을 빚는 행위가 모두 불법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때부터 주점과 가정집에서는 양조장 또는 배급소를 통해 막걸리를 사다 마시게 되었다.**
1962년 '미곡소비절약에관한범국민운동지침'과 1966년 '약탁주제조에있어쌀사용금지(안)'ⓒ국가기록원
해방 이후에도 주세제도는 유지됐다. 196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양곡을 원료로 하는 주정과 소주 제조를 금지하고 탁,약주 제조에 쌀 대신 수입 밀가루를 사용하게 했다.
쉽게 말해 우리술의 주원료인 쌀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막걸리는 밀막걸리로 적응했고, 약주 업체는 90년대까지 계속 줄어 경쟁력을 잃었다. 약주를 증류하여 얻는 전통소주 역시 쇠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맥주와 (초록병 희석식) 소주의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면서, 서민의 술이었던 막걸리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다 1977년 풍년으로 쌀 수확량이 늘어나자 정부는 다시 쌀 소비를 촉진하기로 한다. 밀가루 막걸리를 금지하고 쌀 막걸리를 생산하도록 했다. 그 해 12월 1일에 쌀 막걸리를 허용하는 행정조치가 내려졌고, 14년만에 쌀 막걸리가 다시 등장했다.
그러다 또 쌀 소비가 늘어나자 1979년 11월 1일 막걸리에 쌀만을 사용하도록 한 행정명령을 철회, 밀가루와 옥수수 등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정권의 통제에 따라서 우리술은 변곡을 겪었다.
대한뉴우스 ‘쌀막걸리 생산’(1977)ⓒ국가기록원
한국이 전통주에 다시 눈을 돌린 건 80년대 말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였다. 정부는 ‘문배주’, ‘면천두견주’, ‘경주교동법주’를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각 지방 정부들도 잇달아 지역술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지금까지 무형문화재 술은 총 34개에 이른다. 95년에는 가족 외에 유상이나 무상으로도 줄 수는 없지만 가양주 제조도 허용되었다.
2016년 드디어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가 시행됐다. 이제 주점에서도 술을 만들어 팔 수 있고, 소규모 양조장이 다시 번성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2017년에는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면서 지역 특산주, 전통주가 전국적으로 판매될 수 있는 통로도 생겼다.
한국영화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 그간 한국영화가 우리의 삶을 담아왔다면 지난 세월 그랬듯, 우리술은 외면 받았을 것이고 숨겨야 했을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 대부분의 술자리에는 소주, 맥주, 소맥이 등장하고 과한 음주문화로 연결된다. 그것이 빠른 산업화 시대의 술문화를 반영한 것이니 이 또한 우리의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술 문화의 근간이었던 가양주 문화, 소규모 양조장 문화가 100여년 정도 완전히 사라졌다가 복원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해, 특별한 날 손님 접대를 위해 집에서 술을 빚고 반주로 좋은 술 한 두 잔을 즐긴다.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양조장의 술 한 병을 사거나 새로 지정된 지역 특산주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테이스팅 하고 어울리는 저녁 메뉴를 매칭해본다.
이런 장면이 점점 일상이 되어 우리 드라마, 영화에도 자연스럽게 보여지기를 기대해본다. N
*1935년 일본인들이 작성한 ‘조선주조사’ 기록.
** <향기로운 한식, 우리술 산책’> 허시명 외 8인, 푸디, 2018년. 참고
글 이은해
전통주소믈리에
우리술제조관리사
한국술을 다루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려본다. 정말이지 한국 전통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페어링이란 단어를 시리즈의 타이틀에 사용한 건 그래서 다행이다. Pairing이란 것 자체가 여러 가지 방식을 가능하게 하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제 #2이긴 하지만 이 시점에 이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술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불과 110년 전인 1910년 무렵에는 조선 전체 가구의 1/7이 집에서 술을 제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양주 문화는 조선시대에 절정에 달했고 일제강점기 초반까지도 탁주 정도는 주막에서 손쉽게 만들어 잔술로 팔았다. 1909년 일제는 주세법을 도입했다. 해마다 11월까지 다음 해에 양조할 생산량을 세무서에 신고하고, 그 양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다.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 제조 면허를 내는 가구 수는 줄어들었고, 일제는 세금 징수가 용이한 양조장 단위로 주세를 엄격히 관리했다. 1934년에는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집 또는 소규모로 술을 빚는 행위가 모두 불법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때부터 주점과 가정집에서는 양조장 또는 배급소를 통해 막걸리를 사다 마시게 되었다.**
1962년 '미곡소비절약에관한범국민운동지침'과 1966년 '약탁주제조에있어쌀사용금지(안)'ⓒ국가기록원
해방 이후에도 주세제도는 유지됐다. 196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양곡을 원료로 하는 주정과 소주 제조를 금지하고 탁,약주 제조에 쌀 대신 수입 밀가루를 사용하게 했다.
쉽게 말해 우리술의 주원료인 쌀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막걸리는 밀막걸리로 적응했고, 약주 업체는 90년대까지 계속 줄어 경쟁력을 잃었다. 약주를 증류하여 얻는 전통소주 역시 쇠퇴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맥주와 (초록병 희석식) 소주의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면서, 서민의 술이었던 막걸리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다 1977년 풍년으로 쌀 수확량이 늘어나자 정부는 다시 쌀 소비를 촉진하기로 한다. 밀가루 막걸리를 금지하고 쌀 막걸리를 생산하도록 했다. 그 해 12월 1일에 쌀 막걸리를 허용하는 행정조치가 내려졌고, 14년만에 쌀 막걸리가 다시 등장했다.
그러다 또 쌀 소비가 늘어나자 1979년 11월 1일 막걸리에 쌀만을 사용하도록 한 행정명령을 철회, 밀가루와 옥수수 등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정권의 통제에 따라서 우리술은 변곡을 겪었다.
대한뉴우스 ‘쌀막걸리 생산’(1977)ⓒ국가기록원
한국이 전통주에 다시 눈을 돌린 건 80년대 말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였다. 정부는 ‘문배주’, ‘면천두견주’, ‘경주교동법주’를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각 지방 정부들도 잇달아 지역술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지금까지 무형문화재 술은 총 34개에 이른다. 95년에는 가족 외에 유상이나 무상으로도 줄 수는 없지만 가양주 제조도 허용되었다.
2016년 드디어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가 시행됐다. 이제 주점에서도 술을 만들어 팔 수 있고, 소규모 양조장이 다시 번성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2017년에는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면서 지역 특산주, 전통주가 전국적으로 판매될 수 있는 통로도 생겼다.
한국영화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 그간 한국영화가 우리의 삶을 담아왔다면 지난 세월 그랬듯, 우리술은 외면 받았을 것이고 숨겨야 했을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 대부분의 술자리에는 소주, 맥주, 소맥이 등장하고 과한 음주문화로 연결된다. 그것이 빠른 산업화 시대의 술문화를 반영한 것이니 이 또한 우리의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술 문화의 근간이었던 가양주 문화, 소규모 양조장 문화가 100여년 정도 완전히 사라졌다가 복원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해, 특별한 날 손님 접대를 위해 집에서 술을 빚고 반주로 좋은 술 한 두 잔을 즐긴다.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양조장의 술 한 병을 사거나 새로 지정된 지역 특산주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테이스팅 하고 어울리는 저녁 메뉴를 매칭해본다.
이런 장면이 점점 일상이 되어 우리 드라마, 영화에도 자연스럽게 보여지기를 기대해본다. N
*1935년 일본인들이 작성한 ‘조선주조사’ 기록.
** <향기로운 한식, 우리술 산책’> 허시명 외 8인, 푸디, 2018년. 참고
글 이은해
전통주소믈리에
우리술제조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