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은 이상하다.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을 젊은이의 몸에 불러일으키는 것 같달까.
넓은 의미의 하이볼은 증류주에 탄산수를 더해 먹는 것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증류주는 술의 영혼이자 정수만 남긴 것. 그런가 하면 탄산은 생명의 활기 그 자체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과정이다. 술에서 느껴지는 탄산은 효모가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탄산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찌르르 입과 식도를 긁는 탄산에서 생명의 존재감을 몸으로 느끼고 싶은 것 아닐지. 그래서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증류주에 탄산수를 부을 때, 나는 속으로
‘술이여 깨어나소서’
하고 조용히 읊조린다. 탄산수의 탄탄한 육체를 빌어, 증류주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여기까지는 양조사의 요상한 상상. 이런 것과 별개로 요즘 하이볼이 참 대세다. 한 때의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카테고리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를테면 소주, 맥주, 하이볼, 이런 식. 하이볼은 커스터마이즈의 자유도가 높다는게 치명적인 매력이다. 맛뿐 아니라 바이브의 설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멋진 바에서 폼나게 그 날에 기분에 따라 이런 저런 기주(하이볼의 기본이 되는 술)을 고르고, 레몬껍질을 비틀어 잔 주변에 향을 입히는 그런 하이볼은 쿨하다. 대충 휘뚜루 마뚜루 말아 나오는 하이볼은 뜨겁지. 내 취향은 후자. 그 중에서도 레몬은 슬라이스가 아니라 5분의 1정도 되는 조각을 손으로 쥐어 짜 넣고 그대로 잔 안에 빠뜨려주면 좋다. 이런 하이볼은 시원한 등목이다. 육체노동의 피로를 세찬 산미와 탄산, 마구잡이로 섞인 독한 알콜이 쏵 씻어준다. 생각보다 이런 하이볼은 흔치 않다.
오늘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이자카야에 왔다. 동네 술집이 걸어서 10분이라는 건 그다지 가까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술꾼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걸어온 건 ‘혹시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말아줄까?’하는 설렘 때문이다. 가라아게를 시키고 가쿠 하이볼을 시키고, 기본으로 깔린 에다마메를 까서 한 알씩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하이볼에 대한 기대를 한 껏 올리는 사전 리츄얼. 마침내 나온 하이볼. 일단 레몬은 합격이다. 웨지 모양으로 썰려 밑에 깔려있다.
‘좋았어.’
들뜬 마음과 함께 한 모금 입에 밀어넣는 순간. 아뿔싸. 토닉워터! ‘이제는 이런 건, 위스키 토닉이라고 써주시라구요.’ 하이볼은 탄산수로 타야한다는, 근본주의자인 나. 까다로워 보이는 건 싫어서 별 말 없이 다 마신다.
이런 날은 집에 재빨리 돌아와서 나만의 하이볼을 만든다.
<이과장의 퇴근주>를 썼던 이과장(남편)에 따르면 술과 잔이 차갑기만 하면 그럴싸한 하이볼을 만들 수 있어 어렵지 않다. 술꾼 부부의 집 답게, 가쿠위스키는 언제나 냉동실에 얼려져 있다. 레몬도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고 있다. 잔은 5분 정도 냉동실에 넣어 차게 두었다 꺼내, 얼음을 가득 채우고 꼴꼴꼴 되는 대로 위스키를 따른다. 고단한 날이면 어쩐지 많이 따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탄산수를 얼음에 닿지 않게 부으며(이렇게 하면 탄산이 더 오래간다) ‘술이여 깨어나소서’하고 외치면 끝. 술의 영혼도 깨어나고, 피로에 눌려있던 나의 영혼도 깨어난다.
하이볼 한 모금에 직면한 상황이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난다.
양조장을 정리하고 있다. 내 건강 때문이다. 자동화된 설비나 직원이 따로 없기에 이쁜꽃의 모든 술은 내 손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설비가 고장난 셈이다. 하루이틀의 휴식으로 복구될 수 없는 문제다. 육체가 따라주지 않을 때, 영혼은 응축된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제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나이가 됐다.
많은 걸 덜어내고 나만의 정수를 남기게 됐을 때, 그 때에 청량한 탄산으로 다시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기를.
그런 의미에서 하이볼 한 잔 더!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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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
하이볼은 이상하다.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을 젊은이의 몸에 불러일으키는 것 같달까.
넓은 의미의 하이볼은 증류주에 탄산수를 더해 먹는 것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증류주는 술의 영혼이자 정수만 남긴 것. 그런가 하면 탄산은 생명의 활기 그 자체다. 알코올 발효는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과정이다. 술에서 느껴지는 탄산은 효모가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탄산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찌르르 입과 식도를 긁는 탄산에서 생명의 존재감을 몸으로 느끼고 싶은 것 아닐지. 그래서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증류주에 탄산수를 부을 때, 나는 속으로
‘술이여 깨어나소서’
하고 조용히 읊조린다. 탄산수의 탄탄한 육체를 빌어, 증류주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여기까지는 양조사의 요상한 상상. 이런 것과 별개로 요즘 하이볼이 참 대세다. 한 때의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카테고리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를테면 소주, 맥주, 하이볼, 이런 식. 하이볼은 커스터마이즈의 자유도가 높다는게 치명적인 매력이다. 맛뿐 아니라 바이브의 설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멋진 바에서 폼나게 그 날에 기분에 따라 이런 저런 기주(하이볼의 기본이 되는 술)을 고르고, 레몬껍질을 비틀어 잔 주변에 향을 입히는 그런 하이볼은 쿨하다. 대충 휘뚜루 마뚜루 말아 나오는 하이볼은 뜨겁지. 내 취향은 후자. 그 중에서도 레몬은 슬라이스가 아니라 5분의 1정도 되는 조각을 손으로 쥐어 짜 넣고 그대로 잔 안에 빠뜨려주면 좋다. 이런 하이볼은 시원한 등목이다. 육체노동의 피로를 세찬 산미와 탄산, 마구잡이로 섞인 독한 알콜이 쏵 씻어준다. 생각보다 이런 하이볼은 흔치 않다.
오늘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이자카야에 왔다. 동네 술집이 걸어서 10분이라는 건 그다지 가까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술꾼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걸어온 건 ‘혹시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말아줄까?’하는 설렘 때문이다. 가라아게를 시키고 가쿠 하이볼을 시키고, 기본으로 깔린 에다마메를 까서 한 알씩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다. 하이볼에 대한 기대를 한 껏 올리는 사전 리츄얼. 마침내 나온 하이볼. 일단 레몬은 합격이다. 웨지 모양으로 썰려 밑에 깔려있다.
‘좋았어.’
들뜬 마음과 함께 한 모금 입에 밀어넣는 순간. 아뿔싸. 토닉워터! ‘이제는 이런 건, 위스키 토닉이라고 써주시라구요.’ 하이볼은 탄산수로 타야한다는, 근본주의자인 나. 까다로워 보이는 건 싫어서 별 말 없이 다 마신다.
이런 날은 집에 재빨리 돌아와서 나만의 하이볼을 만든다.
<이과장의 퇴근주>를 썼던 이과장(남편)에 따르면 술과 잔이 차갑기만 하면 그럴싸한 하이볼을 만들 수 있어 어렵지 않다. 술꾼 부부의 집 답게, 가쿠위스키는 언제나 냉동실에 얼려져 있다. 레몬도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고 있다. 잔은 5분 정도 냉동실에 넣어 차게 두었다 꺼내, 얼음을 가득 채우고 꼴꼴꼴 되는 대로 위스키를 따른다. 고단한 날이면 어쩐지 많이 따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탄산수를 얼음에 닿지 않게 부으며(이렇게 하면 탄산이 더 오래간다) ‘술이여 깨어나소서’하고 외치면 끝. 술의 영혼도 깨어나고, 피로에 눌려있던 나의 영혼도 깨어난다.
하이볼 한 모금에 직면한 상황이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난다.
양조장을 정리하고 있다. 내 건강 때문이다. 자동화된 설비나 직원이 따로 없기에 이쁜꽃의 모든 술은 내 손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설비가 고장난 셈이다. 하루이틀의 휴식으로 복구될 수 없는 문제다. 육체가 따라주지 않을 때, 영혼은 응축된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제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나이가 됐다.
많은 걸 덜어내고 나만의 정수를 남기게 됐을 때, 그 때에 청량한 탄산으로 다시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기를.
그런 의미에서 하이볼 한 잔 더!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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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