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술이라고]9. 맛에 반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논알코올 칵테일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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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조사에 따르면, 술을 못 마시지 않으면서도 논알코올 칵테일을 주문해서 마셔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두 명 중 한 명 꼴이라고 한다. 술은 한 잔 더 마시고 싶은데 취하고 싶지 않을 때, 또는 건강이나 다음 날 일정이 걱정될 때 논알코올 칵테일이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주류 시장의 논알코올 바람을 타고 바에서 취급하는 논알코올 칵테일의 비중도 점점 늘고 있다. 메뉴판 뒷장에 구색만 갖춰 자리를 차지하던 논알코올 칵테일이 매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본격적인 논알코올 메뉴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알코올이 함유된 칵테일과 아주 똑같을 수는 없지만, 바텐더의 화려한 테크닉과 기발한 레시피가 만나 훌륭한 논알코올 칵테일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제주에서 맛 본 논알코올 칵테일 두 잔은 맛도 분위기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해리포터도 반한 ‘버터비어’

  ‘버터비어’에 대한 호와 불호는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소설 <해리포터>에 등장하며 전 세계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버터비어. 소설 속 덤블도어가 운영하는 술집 ‘스리 브롬스틱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버터비어를 작가 조앤 롤링은 스카치캔디 맛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달고 느끼하다는 것이 불호의 이유로 언급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버터비어에는 맥주 거품 대신 버터 크림이 듬뿍 올려져 나온다. ‘섞지 말고 차가울 때 꿀떡꿀떡 마시라’는 주인장의 안내에 따라 크게 한 모금 마셔보니, 아래쪽의 차갑고 쌉싸래한 논알코올 맥주와 부드럽고 짭조롬한 캐러멜 맛 버터 크림의 조화가 제법 괜찮다. 단맛을 죽이고 짠맛을 살린 것이 키 포인트였던 듯. 나의 첫인상은 ‘호’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서 찬 기운이 빠지고 크림이 녹으면 확실히 느끼해진다.

분위기

  제주시청 인근 골목에 자리한 ‘마음의 실루엣’은 칵테일 바보다는 북카페 같다. 한 가운데 넓은 테이블과 가장자리 책장에는 주인장이 엄선한 서적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안쪽에는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책상 자리도 있다. 대체로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자리마다 조명이 따로 있어서 개방된 공간인데도 아늑하다. 이곳의 칵테일은 <빨강 머리 앤><캐롤> 등 책이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각각의 이야기와 칵테일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는 메뉴판은 한 권의 책 같다. 공유 일기장, 공유 플레이리스트 등 손님들의 취향을 남길 수 있는 소품에서 주인장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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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silhouetteofmind


샐러드를 한 잔에 ‘토마토 샐러드 칵테일’ 

  ‘음료보다는 맵고 짠 식사 같은 칵테일’이라는 바텐더의 설명에 기대 반 걱정 반. 토마토가 들어갔으니 ‘블러드 메리’ 같은 진한 빨간색 칵테일을 예상했는데, 레몬 색에 가까운 투명한 칵테일이 나와서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엄지와 검지로 꼭 잡히는 칵테일 잔을 들어서 목으로 넘기니 부드러운 거품 사이로 들어오는 향긋하고 새콤한 토마토와 바질의 풍미에 ‘맛있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논알코올 바질 리큐르는 직접 만든 것이라고. 타바스코와 후추로 맛을 낸 매콤한 토마토 소르베와 여러 가지 치즈가 어우러진 페어링 푸드도 칵테일과 아주 잘 어울렸다.

분위기

  ‘포티파이브’는 제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그랜드하얏트 제주 호텔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외국인도 수시로 드나드는 힙플레이스 중 하나. ‘사계절 오감을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처럼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이용해 2~3가지의 시즌 칵테일과 페어링 푸드를 선보인다. 그밖에 오메기떡, 한라봉 등 제주의 특색을 가미한 오리지널 칵테일과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올드 칵테일 등 리스트가 길다. 시즌 칵테일은 레시피를 약간 변경한 논알코올 메뉴로도 즐길 수 있다. 두 명의 바텐더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칵테일을 만들고 메뉴를 설명하고 주변을 세세히 살핀다. 대부분의 리큐르는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칵테일 제조와 서비스 과정에서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등 고심과 열정의 흔적이 역력하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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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fortyfive.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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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9a945522abfd.png 글, 사진 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