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두술도가 원정대 베를린 입성기 #2 - 독일 정복 완료!

2021-10-10
조회수 1758

은하수마켓

은하수 마켓은 12개 업체가 모여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알리는 조촐한 장터로 기획됐다. 조촐할 줄만 알았다. 

12시에 시작이었지만 11시 30분이 지나도록 천막과 테이블이 도착하지 않았다. 주최측과 참가자들의 마음은 좌불안석. 하필이면 독일 총선과 세계 3대 마라톤인 베를린 마라톤이 열리는 날이었다. 거리는 통제되었고 방문객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 이 때를 틈타 민첩하게 희양산 막걸리를 한 잔씩 돌리니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전홍보 성공이다. 11시 50분 가까스로 도착한 설비들이 부랴부랴 자리를 잡자 그제야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히 12시 정각에 오픈할 수 있었다.


세팅완료! ⓒnurukers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플라스틱 병을 지양하는 두술도가와 유리병을 선호하는 독일 정서에 맞춰 막걸리 3종은 250ml 작은 병에 새로 담아 포장했고, 누루커스가 전날 밤에 튀긴 김부각을 함께 진열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희양산 막걸리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초이 행사의 참가자 또는 참가자의 지인이 이야기를 듣고 와서 여러 병을 한꺼번에 사갔다.


 전 날 밤 새롭게 붙인 라벨 ⓒnurukers


두술도가의 넉살은 판매에 가속을 붙였다.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며 시음을 유도하자 맛을 본 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감탄과 함께 구매가 이어졌다. 그렇게 물량은 금새 바닥을 보였고 종료 시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준비해간 수량이 완판되었다. 누루커스의 김부각 역시 꾸준히 팔려나가 종료 즈음 매진되었다.


냉큼 받으시오! ⓒnurukers


독일에서 막걸리를 빚는 레나트는 누루커스에 기고할 만큼 막걸리 애정이 남다른데, 한국에서 막걸리 고수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자신이 만든 막걸리를 종류별로 들고 와 두술도가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원료의 비율부터 숙성기간 등등 무서우리만치 집요하게 양조방법에 대해 캐물었다. 정보도 털리고 기도 탈탈 털린 두술도가가 약간 지쳐보일 정도였다. 두술도가는 레나트의 열정에 혀를 내둘렀고 레나트는 한참동안이나 그곳을 서성거렸다.


자신의 술을 선물하면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레나트 ⓒnurukers


은하수 마켓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에서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거나 의례적으로 참가하던 행사들, 인식부족으로 막걸리를 폄하하는 소비자들에 지쳐갈 즈음,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평가하고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는 이들을 보자 우리 스스로가 막걸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막걸리가 해외에서 먹힐까 고민하는 수많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해외 진출을 꿈꾸는 양조인들에게 해줄 말이 많이 생긴 날이었다.


시작부터 줄서는 두술도가 부스 앞. 곧바로 장터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nurukers


베를린 술기행

한국에서 애주가가 오는데 독일의 전통주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게도 많은 양조장들이 코로나 탓에 투어를 중단한 상태. 그래서 누루커스가 직접 독일의 대표 전통주인 허브술(Kräuterlikör) 시음회를 마련했다. 예거마이스터로 대표되는 허브술은 주정과 갖가지 허브를 혼합하고 설탕을 첨가한 전통 약술이다. 해외에서는 예거밤이라는 이름으로 핫하지만 독일에선 어르신들이 집집마다 두고 추운 날 감기예방이나 몸을 데우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독일 젊은이들에겐 낡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래도 전통 아니겠는가. 어찌됐건 우리에겐 더없이 새로우니 맛을 보기로 했다.


처음 접해보는 다양한 허브술. 잘보면 첩자가 숨어있다. ⓒnurukers


허브술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대부분 가족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어 깊은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누루커스가 준비한 허브술은 총 8종. 나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을 상대로 성장한 예거마이스터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시음해 보았다. 종류만큼이나 맛도 개성도 확연히 달랐다. 여러가지 허브가 들어가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향이 났다. 시음을 마친 후엔 숲에 들어갔다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총평은 

“추울 때 마시면 좋겠군.”

역시 허브술은 감기예방으로.


히야.. 이건.. ⓒnurukers


베를린에서 가장 힙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BRLO(발음이 브를로인줄 알았는데 베얼로였다)에도 다녀왔다.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 여기 뿐이었는데 다행히 여기가 가장 인기가 좋은 브랜드였다. 기대와 달리 협소한 공간에 조금 실망하고 기나긴 이론 수업(?)에 지쳐갈 찰나, 시음한 5종의 맥주 맛이 너무 좋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날의 과음 여파가 씻겨지는 느낌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비어가르텐에서 갓 구운 소세지와 맥주를 마시는데 세상의 시름이 잊혀지는 듯 편안했다. 술 맛과 더불어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색 조명 덕에 더욱 낭만적인 가을밤이었다.


베를린에서 머무는 내내 붉게 물든 얼굴 ⓒnurukers


김치프린세스와의 만남

김치프린세스는 베를린에서 상징적인 한식당이다. 베를린 한식열풍을 주도한 선구자라고나 할까. 아무튼 다양한 미디어 노출과 저서 출판을 통해 한식 = 힙한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독일인에게 전달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운좋게 초대를 받아 방문했는데 한국술의 독일 진출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건설적인 대화 속에서 독일판 막걸리의 싹이 움트는 것 같았다. 막걸리가 독일에 진출한다면 이 곳이 발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명도 김치색인 김치공주 ⓒnurukers


두술도가를 떠나 보내며

방문을 요청했을 땐 정말로 여기서 뵐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이게 현실인지 의심이 들었다. 한국에서, 그것도 시골마을에 가야지 만날 수 있는 분들이 독일 한복판에서 계신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공항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트렙토어 공원. 베를린다운 날씨로 마무리! ⓒnurukers


모든 일정은 순식간에, 무사히 지나갔고 마침내 두 분이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몽환적인 날들이었다. 사람을 이어준다는 술의 힘이 이토록 강한 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베를린에서의 만남이 또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길, 구름이 유난히 멀리 떠 있었다.N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