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떠난지 어언 반년이 지난 누루커스. 어느 날 뜬금없이 두술도가를 독일 베를린으로 초대한다. 딜리셔스 코리안 위크에서 주최하는 한식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런 요청에도 기꺼이 길을 나설 결심을 한 두술도가. 하지만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준비과정
소규모양조장 특성상 2주나 되는 시간을 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일테고, 가뜩이나 바쁜 추석을 앞두고 준비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다. 독일에서 귀국 후 격리를 해야 된다는 점 때문에 미리 백신을 맞고 출국해야 했지만 접종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우여곡절끝에 주최 측의 초대장을 내민 후에야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직접 막걸리를 가지고 와야 한다는 점 역시 큰 난관이었다. 수하물 무게를 초과하면 어쩌나, 세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우려때문에 수량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해외로 나간다는 것 자체도 심리적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 도착하고 공항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코로나로 세상이 뒤집힌 한국과 달리 독일은 놀랄만큼 평온했다. 두술도가의 발걸음은 어느새 마음의 체증을 비운 듯 사뿐했다. 뭐가 그리 걱정이냐는 듯이 투명한 하늘에 구름만 동동 떠다닐 뿐이었다.
레스토랑 쵸이
쵸이는 한식 전문 파인레스토랑이지만 거창하게 으스대지 않는 곳이다.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요리와 아늑함이 잘 어우러진 편안한 공간이다. 이 날의 행사에 초대된 참가자는 고작 12명. 예약요청이 밀려들었지만 차분한 분위기를 위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 쵸이 전경 ⓒnurukers
행사는 크게 막걸리 제조 시연, 희양산 막걸리 소개, 천비향 약주와 진맥소주 소개로 이어졌다. 언어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독일인 특유의 진지함이 무겁게 느껴졌으나 두술도가 대표 두 분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남다른 유머감각 덕분에 이내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화기애애해졌다.
참가자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색다른 양조과정에 눈을 떼지 못했고, 희양산 막걸리에 담긴 철학과 한국의 술 문화가 신기한 듯 귀를 기울였다.
눈을 떼지 못하는 중 ⓒnurukers
독일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막걸리는 대량생산된 살균막걸리 뿐이었다. 게다가 달큰한 술 맛을 꺼리는 문화 탓에 호감을 얻지 못한 막걸리는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양산 막걸리는 산미가 강한 전혀 다른 차원의 생막걸리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걸리의 반쪽이자 사케의 뿌리인 약주의 본질을 잘 살린 천비향, 밀의 풍미가 일품인 진맥소주는 한국하면 초록병 소주가 전부인 줄 알았던 독일인들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 듯했다. 추가시음 요청이 이어졌고 구매문의가 쇄도했지만 안타깝게도 판매는 단 하루, 은하수마켓에서만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희양산 막걸리, 천비향, 진맥소주 ⓒ딜리셔스코리안위크 / 이큰아름
행사시간이 지났지만 어쩐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흥이 오른 사람들은 두술도가와의 대화를 끊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지금 맛본 술에 대해 토론했다. 기어이 한국에 있는 두술도가 양조장까지 오겠다는 몇몇을 어르고 달래 보낸 후 기쁜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화기애애 ⓒnurukers
이 날 저녁, 이야기엔 온기가 있었고 모두가 진심이었다. 여느 홍보 행사처럼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었고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는, 진짜 문화교류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날의 풍경들 ⓒ딜리셔스코리안위크 / 이큰아름
베를린 탐방
기왕 베를린에 왔으니 구경을 안할 수 없다. 현지인(?) 누루커스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두술도가를 위해 베를린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가득한 음울한 곳으로.
첫번째 목적지는 템펠호프 공항. 도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광야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만든 공항으로, 그들의 야욕만큼 위압적인 건물이 볼거리다. 분단 후에는 동독 영토 안에 고립된 서베를린 주민을 위해 물자수송 통로 역할을 했는데, 90초마다 수송기가 도착했다고 하니 얼마나 분주했을지 짐작이 간다. 통일 후 이곳은 주민들의 결정에 따라 공원으로 탈바꿈했고 영원히 개발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실제로 이 넓은 땅에 새로운 건축물은 들어설 수 없어 황량한 모습을 유지한 채 서서히 풍화되고 있다.
ⓒnurukers
다음 장소는 악마의 산.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베를린 서쪽 끝에 도심의 전쟁 잔해를 쌓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산이 될 만큼 거대해졌고, 실제로 산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이 평지인 독일에서 그것도 인공적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진 희귀한 산이다. 분단 후에는 베를린에서 제일 높은 이곳에 동베를린을 감시하기 위한 감청시설이 세워졌다. 지금은 흉물처럼 남아 과거의 흔적을 펄럭이고 있지만 예술이 덧입혀져서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nurukers
마지막 목적지는 장벽공원. 분단의 기억을 되살려 보존하고 아픔을 공유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삼엄했던 장벽 경계를 그대로 남겨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장벽을 넘다 희생된 사람들, 장벽이 집을 관통하게 되어 생이별을 한 가족 등 참담한 사연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동안 해가 저물었고, 장벽을 따라 늘어선 철근은 아픔을 안은 채 붉게 물들어 있었다.
ⓒnurukers
유명 관광지들을 보여드리지 않아 머쓱했지만 여행자로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특별한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 두술도가 두 분에게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그저 만족하셨기를 바라며 누루커스판 회색 투어를 마무리 했다.N - 2부에 계속
독일로 떠난지 어언 반년이 지난 누루커스. 어느 날 뜬금없이 두술도가를 독일 베를린으로 초대한다. 딜리셔스 코리안 위크에서 주최하는 한식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런 요청에도 기꺼이 길을 나설 결심을 한 두술도가. 하지만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준비과정
소규모양조장 특성상 2주나 되는 시간을 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일테고, 가뜩이나 바쁜 추석을 앞두고 준비해야할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다. 독일에서 귀국 후 격리를 해야 된다는 점 때문에 미리 백신을 맞고 출국해야 했지만 접종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우여곡절끝에 주최 측의 초대장을 내민 후에야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직접 막걸리를 가지고 와야 한다는 점 역시 큰 난관이었다. 수하물 무게를 초과하면 어쩌나, 세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우려때문에 수량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해외로 나간다는 것 자체도 심리적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 도착하고 공항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코로나로 세상이 뒤집힌 한국과 달리 독일은 놀랄만큼 평온했다. 두술도가의 발걸음은 어느새 마음의 체증을 비운 듯 사뿐했다. 뭐가 그리 걱정이냐는 듯이 투명한 하늘에 구름만 동동 떠다닐 뿐이었다.
레스토랑 쵸이
쵸이는 한식 전문 파인레스토랑이지만 거창하게 으스대지 않는 곳이다. 소박하고 정성스러운 요리와 아늑함이 잘 어우러진 편안한 공간이다. 이 날의 행사에 초대된 참가자는 고작 12명. 예약요청이 밀려들었지만 차분한 분위기를 위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 쵸이 전경 ⓒnurukers
행사는 크게 막걸리 제조 시연, 희양산 막걸리 소개, 천비향 약주와 진맥소주 소개로 이어졌다. 언어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독일인 특유의 진지함이 무겁게 느껴졌으나 두술도가 대표 두 분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남다른 유머감각 덕분에 이내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화기애애해졌다.
참가자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색다른 양조과정에 눈을 떼지 못했고, 희양산 막걸리에 담긴 철학과 한국의 술 문화가 신기한 듯 귀를 기울였다.
눈을 떼지 못하는 중 ⓒnurukers
독일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막걸리는 대량생산된 살균막걸리 뿐이었다. 게다가 달큰한 술 맛을 꺼리는 문화 탓에 호감을 얻지 못한 막걸리는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양산 막걸리는 산미가 강한 전혀 다른 차원의 생막걸리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걸리의 반쪽이자 사케의 뿌리인 약주의 본질을 잘 살린 천비향, 밀의 풍미가 일품인 진맥소주는 한국하면 초록병 소주가 전부인 줄 알았던 독일인들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 듯했다. 추가시음 요청이 이어졌고 구매문의가 쇄도했지만 안타깝게도 판매는 단 하루, 은하수마켓에서만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희양산 막걸리, 천비향, 진맥소주 ⓒ딜리셔스코리안위크 / 이큰아름
행사시간이 지났지만 어쩐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흥이 오른 사람들은 두술도가와의 대화를 끊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지금 맛본 술에 대해 토론했다. 기어이 한국에 있는 두술도가 양조장까지 오겠다는 몇몇을 어르고 달래 보낸 후 기쁜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화기애애 ⓒnurukers
이 날 저녁, 이야기엔 온기가 있었고 모두가 진심이었다. 여느 홍보 행사처럼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었고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는, 진짜 문화교류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날의 풍경들 ⓒ딜리셔스코리안위크 / 이큰아름
베를린 탐방
기왕 베를린에 왔으니 구경을 안할 수 없다. 현지인(?) 누루커스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두술도가를 위해 베를린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가득한 음울한 곳으로.
첫번째 목적지는 템펠호프 공항. 도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광야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만든 공항으로, 그들의 야욕만큼 위압적인 건물이 볼거리다. 분단 후에는 동독 영토 안에 고립된 서베를린 주민을 위해 물자수송 통로 역할을 했는데, 90초마다 수송기가 도착했다고 하니 얼마나 분주했을지 짐작이 간다. 통일 후 이곳은 주민들의 결정에 따라 공원으로 탈바꿈했고 영원히 개발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실제로 이 넓은 땅에 새로운 건축물은 들어설 수 없어 황량한 모습을 유지한 채 서서히 풍화되고 있다.
ⓒnurukers
다음 장소는 악마의 산.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베를린 서쪽 끝에 도심의 전쟁 잔해를 쌓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산이 될 만큼 거대해졌고, 실제로 산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이 평지인 독일에서 그것도 인공적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진 희귀한 산이다. 분단 후에는 베를린에서 제일 높은 이곳에 동베를린을 감시하기 위한 감청시설이 세워졌다. 지금은 흉물처럼 남아 과거의 흔적을 펄럭이고 있지만 예술이 덧입혀져서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nurukers
마지막 목적지는 장벽공원. 분단의 기억을 되살려 보존하고 아픔을 공유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삼엄했던 장벽 경계를 그대로 남겨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장벽을 넘다 희생된 사람들, 장벽이 집을 관통하게 되어 생이별을 한 가족 등 참담한 사연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동안 해가 저물었고, 장벽을 따라 늘어선 철근은 아픔을 안은 채 붉게 물들어 있었다.
ⓒnurukers
유명 관광지들을 보여드리지 않아 머쓱했지만 여행자로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특별한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 두술도가 두 분에게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그저 만족하셨기를 바라며 누루커스판 회색 투어를 마무리 했다.N -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