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산책]아, 그만 살고 싶은데 금요일 밤 혼맥이 문제다.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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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약속도 없는 금요일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거실 바닥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고개를 들 기운도 없다. 휴식이 폭포처럼 쏟아져 온 몸을 시원하게 적시는 상상을 한다. 회사에 남겨 놓은 일감이 망령처럼 집까지 따라왔지만 아 모르겠고 나는 그냥 격렬하게 힐링 거리를 찾는다.


눈동자만 간신히 돌려 창 밖을 본다. 이제 막 집에 왔을 뿐인데 하늘의 해는 야속하게도 인사도 없이 종적을 감춰버렸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 마시고 힘차게 내뿜는 반동으로 몸을 일으킨다. 가만히 앉아 등허리를 구부렸다 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어떻게 맞이한 주말인데.


눅눅한 밤 공기를 헤치고 밖으로 나선다. 하늘의 별들은 눈치도 없이 반짝이며 봐 달라고 아이처럼 칭얼댄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마트로 향한다. 마트의 냉기에 약간 정신이 든다. 맥주가 매대에 쌓인 채 할인 가격의 명찰을 달고 있다. 시선을 피한다. 맛없는 건 참아도 미지근한 건 용납할 수 없다. 냉장고를 열고 국산 맥주 6개 팩을 집는다. 더울 땐 향이고 나발이고 됐고, 가볍고 시원한 게 최고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피곤이 줄줄 흘렀던 거실에 다시 앉아 넷플릭스를 켠다. 볼 게 없어도 상관없다. 그냥 켠다. 차가운 맥주를 손에 들고 손가락을 그 위로 가져간다. 세상의 모든 긴장이 모이는 순간이다. 바닥도 천장도 넷플릭스도 초조한 눈으로 손가락을 응시한다. 딸깍하는 소리에 여유가 파도처럼 밀려와 공간을 뒤흔든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 순간 잊고 있던 남도의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과격하게 후려친다. 

정신차려 이 바보야. 우리에겐 주말이라는 영원한 바다가 있다구.



아, 그만 살고 싶은데 금요일 밤 혼맥이 문제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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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우

아 됐고, 약속 없는 금요일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