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루마블
2000년대 초, 술게임 역사의 판도를 바꾼 신세기 놀이가 등장했다. 주루마블이다.
주루마블은 보드게임 부루마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는데, 주사위를 던져 말이 이동하는 규칙은 같지만 건물을 매매하는 방식이 음주벌칙으로 대체되었다.
초창기의 주루마블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조악한 보드였지만 네티즌들은 위트와 참신함에 감탄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내 상품화되기에 이른다.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검색하면 1000개 이상의 상품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대중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용기와 객기를 겸비한 얼리어덥터들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초트렌디한 게임이었다.
이랬던 부루마블이.. ⓒ부루마블 씨앗사
이렇게 변했다.. ⓒ주루주루
주루마블의 가장 큰 장점은 광범위한 자유도와 간편한 제작 방법일 것이다. 굳이 기성품을 사지 않더라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고 벌칙 내용도 무난한 수준에서 하드코어한 레벨까지 멤버의 성향에 맞춰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주령구가 현대버전으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성격이 비슷한데 벌칙의 다양성과 주사의 허용범위는 비교할 수 없다. 다채로운 벌칙과 흥분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무작위성의 스릴은 몰입의 깊이를 계속해서 파내려간다. 게임은 정신 또는 육체의 내구력이 손상을 입을 즈음 끝이 난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다. 주루마블을 즐기는 현대인의 체력은 진화한 흥의 크기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늘날의 흥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루마블은 현대의 음주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대유산이 아닐까 싶다.
야자타임
한국의 기업 내 분위기는 엄격하다. 신생기업들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회사는 직렬구조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물론 이 과정에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팀웍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높으신 분들이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아량을 과시하고 아랫사람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목적으로 허용치 내에서 허락한 술게임이 바로 야자타임이다. 술자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권한 밖이라 여기는 아랫사람은 야자타임을 통해서라도 뭔가를 해소해보려고 한다.
선 넘기 직전
야자타임은 단순한 룰에 비해 심리적으로 굉장히 고난도 게임이다. 보통 상하관계가 뚜렷한 집단 내에서 위계질서를 일시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얻는 효과를 노리는 것인데, 억눌린 감정을 과감히 드러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지만 그 선이라는 것이 참 미묘한 것인지라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일정 시간 안에서 위의 직급을 가진 사람에게 존칭을 빼고 친구처럼 반말을 하는 것이 게임의 대원칙이다. 초반은 짜릿히다. 하지만 감정을 분출하다 보면 격앙되기 마련이고 솔직함을 넘어 울분을 토하게 된다. 욕설과 비아냥이 나오는 순간부터 게임의 본질은 파괴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만드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선 넘은 후
사실 야자타임은 아랫사람에게 해방감을 선사하기보다 아랫사람의 인성을 확인하는 테스트로 보는 것이 맞다. 취한 상태에서의 쾌감은 찰나지만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해야하는 서먹함은 시공을 초월할 정도로 길다. 야자타임은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여실히 드러내 희화화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술게임이다.
눈치게임
서구권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없다.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치라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눈치를 분위기 파악 능력 또는 튀지 않는데 필요한 기질 정도로 이해하며 부정적으로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90년대생들이 부상하는 현재는 눈치 챙기라는 둥 새로운 표현이 생기며 기존의 탁한 어감을 정화시키고 있다.
지, 지금인가???
사실 사전적 의미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으로 부정적이기는커녕 배려의 차원으로 읽힐 수 있다. 눈치게임은 이 본연의 뜻을 그대로 살린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자리에 앉은 채 숫자만 외치면 된다. 숫자는 1부터 시작해 플레이어의 수만큼 순차적으로 증가하는데 반드시 한 번을 외쳐야 한다. 같은 숫자를 두 명 이상이 외친다거나 마지막에 남게 되는 경우 벌칙을 받는다.
게임은 순식간에 끝난다.
눈치게임은 예고없이 즉흥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누군가 눈치게임을 외치는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된 것이며 눈치를 보는 동안의 정적은 생과 사가 걸린 듯 긴장되는 순간이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침묵의 서스펜스는 벌칙이 확정되며 거대한 희열로 폭발하며 끝난다.
진행시간은 짧지만 밀도가 굉장히 높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분산된 집중력을 회복하는데 유용하다. 따라서 눈치게임은 미니멀하지만 기능성과 효율성을 두루 갖춘 가장 21세기다운 술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루마블
2000년대 초, 술게임 역사의 판도를 바꾼 신세기 놀이가 등장했다. 주루마블이다.
주루마블은 보드게임 부루마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는데, 주사위를 던져 말이 이동하는 규칙은 같지만 건물을 매매하는 방식이 음주벌칙으로 대체되었다.
초창기의 주루마블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조악한 보드였지만 네티즌들은 위트와 참신함에 감탄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내 상품화되기에 이른다.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검색하면 1000개 이상의 상품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대중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용기와 객기를 겸비한 얼리어덥터들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초트렌디한 게임이었다.
이랬던 부루마블이.. ⓒ부루마블 씨앗사
이렇게 변했다.. ⓒ주루주루
주루마블의 가장 큰 장점은 광범위한 자유도와 간편한 제작 방법일 것이다. 굳이 기성품을 사지 않더라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고 벌칙 내용도 무난한 수준에서 하드코어한 레벨까지 멤버의 성향에 맞춰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주령구가 현대버전으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성격이 비슷한데 벌칙의 다양성과 주사의 허용범위는 비교할 수 없다. 다채로운 벌칙과 흥분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무작위성의 스릴은 몰입의 깊이를 계속해서 파내려간다. 게임은 정신 또는 육체의 내구력이 손상을 입을 즈음 끝이 난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다. 주루마블을 즐기는 현대인의 체력은 진화한 흥의 크기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늘날의 흥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루마블은 현대의 음주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대유산이 아닐까 싶다.
야자타임
한국의 기업 내 분위기는 엄격하다. 신생기업들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회사는 직렬구조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물론 이 과정에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팀웍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높으신 분들이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아량을 과시하고 아랫사람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목적으로 허용치 내에서 허락한 술게임이 바로 야자타임이다. 술자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권한 밖이라 여기는 아랫사람은 야자타임을 통해서라도 뭔가를 해소해보려고 한다.
선 넘기 직전
야자타임은 단순한 룰에 비해 심리적으로 굉장히 고난도 게임이다. 보통 상하관계가 뚜렷한 집단 내에서 위계질서를 일시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얻는 효과를 노리는 것인데, 억눌린 감정을 과감히 드러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지만 그 선이라는 것이 참 미묘한 것인지라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일정 시간 안에서 위의 직급을 가진 사람에게 존칭을 빼고 친구처럼 반말을 하는 것이 게임의 대원칙이다. 초반은 짜릿히다. 하지만 감정을 분출하다 보면 격앙되기 마련이고 솔직함을 넘어 울분을 토하게 된다. 욕설과 비아냥이 나오는 순간부터 게임의 본질은 파괴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만드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선 넘은 후
사실 야자타임은 아랫사람에게 해방감을 선사하기보다 아랫사람의 인성을 확인하는 테스트로 보는 것이 맞다. 취한 상태에서의 쾌감은 찰나지만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해야하는 서먹함은 시공을 초월할 정도로 길다. 야자타임은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여실히 드러내 희화화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술게임이다.
눈치게임
서구권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없다.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치라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눈치를 분위기 파악 능력 또는 튀지 않는데 필요한 기질 정도로 이해하며 부정적으로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90년대생들이 부상하는 현재는 눈치 챙기라는 둥 새로운 표현이 생기며 기존의 탁한 어감을 정화시키고 있다.
지, 지금인가???
사실 사전적 의미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으로 부정적이기는커녕 배려의 차원으로 읽힐 수 있다. 눈치게임은 이 본연의 뜻을 그대로 살린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자리에 앉은 채 숫자만 외치면 된다. 숫자는 1부터 시작해 플레이어의 수만큼 순차적으로 증가하는데 반드시 한 번을 외쳐야 한다. 같은 숫자를 두 명 이상이 외친다거나 마지막에 남게 되는 경우 벌칙을 받는다.
게임은 순식간에 끝난다.
눈치게임은 예고없이 즉흥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누군가 눈치게임을 외치는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된 것이며 눈치를 보는 동안의 정적은 생과 사가 걸린 듯 긴장되는 순간이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침묵의 서스펜스는 벌칙이 확정되며 거대한 희열로 폭발하며 끝난다.
진행시간은 짧지만 밀도가 굉장히 높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분산된 집중력을 회복하는데 유용하다. 따라서 눈치게임은 미니멀하지만 기능성과 효율성을 두루 갖춘 가장 21세기다운 술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