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두술도가ㅣ좋아서 빚는 술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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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ukers  


1995년 문경군과 점촌시가 통합되어 문경시가 탄생했다. 시내엔 여전히 점촌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그곳 토박이인 지인이 이르기를 점처럼 작은 마을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검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만큼 작고 외진 곳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촌에서 차로 30분을 더 들어가야 두술도가를 만날 수 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풍경은 좋아지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인적이 드물고 고요함이 가득하니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점점 불안해진다. 그러다 한 마을에 닿는데 강물 흐르는 소리뿐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이 곳이 가은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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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리 같은 양조장

가은아자개장터 한쪽에 두술도가가 있다. 정부가 장터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시장 아케이드 외부에 테마파크같은 공간을 조성해 놓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적막하다. 덕분에 호젓한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좋지만 한편으론 상권이 걱정 되기도 한다. 행사를 위한 무대가 공간 한 가운데에 서서 횡댕그렁하게 장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자못 쓸쓸하다.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관광객 유치 전략도 함께 고려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목적지를 발견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글로 쓰여진 커다란 현판이 문옆에 걸린 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컨셉이긴 하지만 양조장 지붕이 초가집처럼 짚으로 덮여있다. 아스팔트 바닥, 초가지붕, 그리고 그 사이의 유리 자동문. 뭔가 어색하지만 시공간을 파괴하는 조합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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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양조장과 까페가 합쳐진 모습이다. 두 공간을 철저히 분리해 한쪽에서 다른 한쪽이 보이지는 않는다. 까페공간은 심신이 녹아내릴 듯 아늑하다. 

진공관 오디오와 클래식 음반들, 동화작가 전미화님이 그린 알록달록한 그림들, 푹신한 소파와 은은한 나무향기. 그리고 익숙한 술내음까지. 마음대로 발 한걸음 내딛을 곳조차 없는 도시를 떠나 이제야 치유의 공간에 왔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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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벗고 자연으로

김두수, 이재희 대표 부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로, 프로그래머로 근무했다. 첨단기술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자연의 따스함이 그리웠던 것일까, 어느 날 귀농을 결심하고 귀국하게 된다. 

녹색평론이라는 생태주의 잡지가 그런 무모한(?) 결단을 내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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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학교를 다니며 살아갈 터를 찾아 석달동안 전국을 들추고 다녔다.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이곳 문경이었다. 낡은 집을 단돈 100만원에 샀지만 오지에서의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산에서 땔감을 해와 아궁이에 불을 붙여야 했고, 갑자기 외지에서 들어온 이방인을 경계하는 분위기를 없애고자 새벽부터 농삿일을 도왔다. 

이런 동화 같은(?) 생활을 10년동안이나 했다니 감탄을 넘어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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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빚는 술

귀농을 하고 보니 지역에서 유기농 우렁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좋은 품질만큼 가격이 높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정작 사람들이 마시는 술은 합성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였다. 그래서 남는 쌀을 소비하고 동시에 좋은 술을 만들어 보고자 술을 빚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양조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시중에 어떤 술들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 때 등불이 된 것이 국순당 창업주인 배상면 회장이 쓴 전통주 주조관련 서적들이었다. 독학으로 전통주를 연구하고 공학자의 기지를 발휘해 체계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희양산 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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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분명 눈길이 가는 제품이었다. 사업적 목적보다 제조자 본인이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느낌이 충만했다. 마치 괴짜 거장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마이웨이 정신이랄까. 깔끔한 신맛과 높은 도수, 개성 넘치는 라벨까지 모든 부분이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SNS를 타고 이름을 좀 알리는가 싶더니 이내 공급이 모자란 상황에 이르렀다.


“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고 할 수 있죠. 

술을 빚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러면서 힘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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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진 시간을 전부 술 빚는 데 쏟고 있다. 마을에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양조장이 주인을 잃고 놓여 있는데 이를 맡아서 운영해 볼 계획도 하고 있다. 술을 빚는 일은 힘들지만 여전히 이 작업이 즐겁다.


“좋아서 빚는 술이에요. 술을 빚는게 재밌어요.”


술은 개인의 취향이 좌우하는 기호식품이다. 그건 양조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선호하는 맛을 내고, 전하고 싶은 기분을 담는다.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두술도가는 술에 유머를 섞는다. 그래서인지 마시는 내내 스트레스는 잊혀지고 즐거운 이야기만 떠오른다. 그야말로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술인 것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미지로 남고 싶어요. 

세상의 풍파에 휘둘리지 않는 영혼이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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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전통주 라벨의 탄생 

처음엔 용량을 500ml로만 출시했는데 납품하는 주점에서 일반적인 막걸리 양인 750ml를 요청했다. 라벨을 고민하던 차에 희양산 공동체에 함께 속해 있는 동화작가 전미화님과 마음이 맞아 기획하게 되었다. 

기존 작품 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 라벨로 사용하는데 주기적으로 바꾸고 있어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전미화 작가는 그 전에도 작가로서 인지도가 있었지만 이제 전통주 업계에선 희양산 막걸리 라벨로 더 유명해졌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이 막걸리병에 쓰일 줄 본인 스스로도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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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술도가에서 새 라벨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심 기대하게 될 정도. 사실 전미화님의 작품 스타일을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활용하고 싶다고 하니 나름 힙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은 콜라보를 해 보아도 재밌을 듯.


술소개

희양산 막걸리는 산미가 강한 막걸리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신 맛이다. 달기만 한 맛은 금방 질린다. 시기만 하면 인상이 써진다. 하지만 희양산 막걸리는 식욕을 돋우고 밝은 에너지를 깨우는 달면서 상큼한 맛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맛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접점을 포착해 노련하게 표현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름부터 힙한 오!미자씨는 문경오미자를 사용해 만들었다.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고, 만든 이조차도 당황했다고 한다. 운이 좋게 마셔볼 기회가 있었는데 오미자가 가진 어른 입맛(?) 취향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기호에 맞춰 밸런스를 조절한 듯 보인다. 베리류 특유의 상큼함과 곡물의 고소함이 조화로웠다. 다시 맛보려먼 다음 오미자 수확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데 예약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누루커스 memo/Tip

주변에 걸어서 갈 만한 숙소가 없다. 허름한 모텔(이라 쓰고 여인숙이라고 읽는다)이 한 곳 있는데 추천하고 싶지 않다. 

직접 운전을 해서 방문한다면 사전에 숙소를 꼭 알아보고 가야한다.

대표님 유머감각이 남다르다. 대화 중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아재유머에 대한 내성을 충분히 키우고 가자. 

유머집을 숙독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