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을 배울 수 있는 곳. 어디가 있을까. 시골 어디에 숨어있는 양조장, 오래된 건물, 시큼한 알콜내가 떠오른다. 괴짜같은 명인이 호통을 치며 술 담는 법을 가르쳐줄 것만 같다. 사람과 차, 빌딩이 뒤엉킨 시끌벅적한 서울 한복판에 가양주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은 꽤나 낯설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양조장과 새로운 한국술 주점 중 다수가 이곳을 거쳐갔다. 묵묵히 전통주를 만들던 1세대, 양조장 2세대, 우연과 필연으로 한국술에 빠진 청년들, 한국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술을 배운다. 술을 빚고, 마시고, 나눈다.
연구소를 이끄는 건 류인수 소장. 전형적인 호인의 모습이다. 다부진 체격과 넉넉한 웃음, 개량한복과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누가 보아도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애주가였을 것만 같은 그에게도 독특한 사연이 있었다.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nurukers
그는 학창시절 축구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좌절을 겪었다. 다시 입시를 준비하려고 하니 돈도, 학업에 대한 기본기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바에 늘어진 수많은 술 중에 한국의 술이 없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제대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2년 동안 일본 양조유학을 준비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였다. 하지만 한일관계 악화와 여러 일들이 겹쳐 공항에서 입국이 불허됐고, 결국 이 꿈도 무산됐다.
“일본에 가지 못한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거죠. 덕분에 한국 전통주에 전념하게 되었고, 양조연구에 있어서 일본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 날의 좌절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류 소장. 얼굴엔 미소를 띄고 있지만 그 뒤로 벽지처럼 늘어선 수많은 술들은 지난날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술을 가르치는 이유
처음부터 교육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가양주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국가양주협회를 설립했지만 우리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었다. 단순한 홍보로는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찾은 해답이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 2008년 일본에서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서도 같이 막걸리 붐이 일었다. 교육기관을 설립한 2009년은 그런 점에서 아주 절묘한 시기였다. 세간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고 시작부터 교육생들이 가득 찼다. 당시 입소문이 이어지면서 가양주연구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홍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교육생이 또다른 사업방식을 만들어내고 그게 홍보로 이어지는 걸 보고는, 나는 교육에만 집중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말이죠.”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nurukers
“편견을 갖지 않게 교육하는 게 중요합니다.”
테이블에 새로 출시된 술이 올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술을 평가하기보다 술을 다루는 태도를 먼저 이야기한다.
우열을 가리는 건 경쟁만을 부추길 뿐이다. 전통주 같은 소규모 업계에선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의 진짜 본질은 객관적인 눈을 만들어 주고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 짧은 한 문장에서 그 의미가 와닿는다.
누룩에 대해서도 소위 ‘국뽕의식’에 대한 신중함이 느껴졌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누룩을 쓴다. 한국의 누룩은 순수한 형태에 가깝지만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개성이 중요하다.
“누룩은 환경에 따라 달라질 뿐 우열을 말할 수는 없어요. 그 지역에 적합한 재료로 그곳에 맞는 술이 만들어 지는 겁니다.”
약간의 국뽕의식을 가지고 가슴벅찬 대답을 기대했던 우리는 스스로 조금 머쓱해졌다. 다만 그는 한국술의 정체성을 위해 양조장만의 누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양주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양조장의 개성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누룩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술을 무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와인, 맥주, 위스키, 사케 등 외국 술에는 관대하면서도 우리술에는 그만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잘 몰랐기 때문일 터.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가양주연구소를 거쳐 확장되고 있는 한국술의 저변 ⓒ가양주연구소/양온서
전통주의 단점이 장점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다. 발효과정에서 일어나는 공기팽창이 탄산막걸리의 형태로 변화하고, 주질의 불안정을 빈티지 개념으로 전환해 인기를 끄는 제품이 등장했다.
편견은 우리한테 있다고 류인수 소장은 말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기까지 하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얼마나 납득하고 있는가. 술은 문화다. 막걸리를 흔드는 건 점잖지 않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술을 즐기는 문화다. 그런 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한국술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한국술 시장 또한 계속 성장할 거라고 본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이후 접근성은 높아졌고 유입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질 거에요. 외국의 술을 먹을 만큼 먹어본 사람들이 결국 전통주로 돌아올 것이고 품질이 나아진 전통주에 만족하게 될 겁니다.”
체계적 교육을 위한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목표에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글 진병우
우리술을 배울 수 있는 곳. 어디가 있을까. 시골 어디에 숨어있는 양조장, 오래된 건물, 시큼한 알콜내가 떠오른다. 괴짜같은 명인이 호통을 치며 술 담는 법을 가르쳐줄 것만 같다. 사람과 차, 빌딩이 뒤엉킨 시끌벅적한 서울 한복판에 가양주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은 꽤나 낯설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양조장과 새로운 한국술 주점 중 다수가 이곳을 거쳐갔다. 묵묵히 전통주를 만들던 1세대, 양조장 2세대, 우연과 필연으로 한국술에 빠진 청년들, 한국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술을 배운다. 술을 빚고, 마시고, 나눈다.
연구소를 이끄는 건 류인수 소장. 전형적인 호인의 모습이다. 다부진 체격과 넉넉한 웃음, 개량한복과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누가 보아도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애주가였을 것만 같은 그에게도 독특한 사연이 있었다.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nurukers
그는 학창시절 축구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좌절을 겪었다. 다시 입시를 준비하려고 하니 돈도, 학업에 대한 기본기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바에 늘어진 수많은 술 중에 한국의 술이 없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제대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2년 동안 일본 양조유학을 준비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였다. 하지만 한일관계 악화와 여러 일들이 겹쳐 공항에서 입국이 불허됐고, 결국 이 꿈도 무산됐다.
그 날의 좌절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류 소장. 얼굴엔 미소를 띄고 있지만 그 뒤로 벽지처럼 늘어선 수많은 술들은 지난날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술을 가르치는 이유
처음부터 교육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가양주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국가양주협회를 설립했지만 우리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었다. 단순한 홍보로는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찾은 해답이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 2008년 일본에서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서도 같이 막걸리 붐이 일었다. 교육기관을 설립한 2009년은 그런 점에서 아주 절묘한 시기였다. 세간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고 시작부터 교육생들이 가득 찼다. 당시 입소문이 이어지면서 가양주연구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nurukers
테이블에 새로 출시된 술이 올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술을 평가하기보다 술을 다루는 태도를 먼저 이야기한다.
우열을 가리는 건 경쟁만을 부추길 뿐이다. 전통주 같은 소규모 업계에선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의 진짜 본질은 객관적인 눈을 만들어 주고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 짧은 한 문장에서 그 의미가 와닿는다.
누룩에 대해서도 소위 ‘국뽕의식’에 대한 신중함이 느껴졌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누룩을 쓴다. 한국의 누룩은 순수한 형태에 가깝지만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개성이 중요하다.
약간의 국뽕의식을 가지고 가슴벅찬 대답을 기대했던 우리는 스스로 조금 머쓱해졌다. 다만 그는 한국술의 정체성을 위해 양조장만의 누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양주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양조장의 개성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누룩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술을 무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와인, 맥주, 위스키, 사케 등 외국 술에는 관대하면서도 우리술에는 그만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잘 몰랐기 때문일 터.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가양주연구소를 거쳐 확장되고 있는 한국술의 저변 ⓒ가양주연구소/양온서
전통주의 단점이 장점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다. 발효과정에서 일어나는 공기팽창이 탄산막걸리의 형태로 변화하고, 주질의 불안정을 빈티지 개념으로 전환해 인기를 끄는 제품이 등장했다.
편견은 우리한테 있다고 류인수 소장은 말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기까지 하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얼마나 납득하고 있는가. 술은 문화다. 막걸리를 흔드는 건 점잖지 않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술을 즐기는 문화다. 그런 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한국술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한국술 시장 또한 계속 성장할 거라고 본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이후 접근성은 높아졌고 유입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질 거에요. 외국의 술을 먹을 만큼 먹어본 사람들이 결국 전통주로 돌아올 것이고 품질이 나아진 전통주에 만족하게 될 겁니다.”
체계적 교육을 위한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목표에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글 진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