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한강주조ㅣ서울다운 막걸리, 술다운 막걸리

2020-08-03
조회수 2874


한강주조 가는 길

지친 서울살이를 위로해주는 건 역시 한강이다.  아무말 없이 흐르는 한강을 보고 있으면 그저 위로가 된다. 가끔은 꼭 한강을 찾아햐 하는 이유다. 

2호선 성수역. 한강변까지 걸을까 싶지만, 이번엔 그 전에 발길을 멈춰본다. 네모 반듯한 시멘트 건물이 늘어져 있다. 외벽엔 세월이 보이는 검은 자국이 보이고, 철문의 페인트칠은 듬성듬성 벗겨져 녹이 슬어있다. 가변에 빼곡히 들어선 시장 점포들과 장보는 사람들, 그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버스.



골목에 들어서자 버스차고지가 눈에 띈다. 차고지의 초록 벽면이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위한 크로마키 배경처럼 보여서 영화 세트장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 차고지 바로 앞 이름없는 건물 2층에 한강주조 양조장이 있다. 

그토록 번화한 한강의 지척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서울 토박이들도 놀란다. 성수동은 그렇다. 낡은 것으로 가득하고, 그것을 즐기러 모여든 이들로 늘 북적인다. 


서울, 한강, 그리고 막걸리

곳곳을 물들인 짙은 파랑과 독특한 로고, 범상치 않은 스타일로 개성을 뿜어내는 사람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성수동 힙스터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다. 달큰한 막걸리 냄새만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곳이 양조장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깨끗한 신발로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간다.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누군가 나온다.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과 동그란 뿔테안경에서 자유로움과 확고한 철칙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강주조 고성용 대표는 ‘서울술’과 ‘젊은술’을 누구보다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이다. 


“한강은 한국역사의 물줄기이자 서울의 젖줄이죠. 과거의 것을 현대적인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미래에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술을 만들려고 ‘한강’이라는 이름을 생각했어요.”

그동안 한강이란 이름을 딴 양조장이 없었다는게 새삼스럽다. 너무나 당연히 옆에 있는 것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한강주조는 서울의 물과 서울의 쌀로 서울의 막걸리를 만든다.



한강주조 “술은 술다워야 한다”

“기존 전통주의 단점을 저희의 방식으로 보완하고 표현한 것이 나루생막걸리에요.
라벨 디자인도 건강, 성분에 대한 강조는 빼고 심플하게 했어요. 술은 그런걸 따질 필요가 없어요.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잖아요. 술은 술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맛이에요. 맛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입니다.”

나루생막걸리. 막걸리의 정체성도 한강에서 찾았다. 그가 망설임 없이 술을 꺼내 잔에 따른다. 반듯한 원통형 전용잔이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럽다. 한모금에 잘 익은 배 향이 난다. 그간 알고 있던 막걸리보다 자연스럽고 목넘김이 부드럽다.

사무실과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작업장에서는 장엄한 오페라 음악이 울려 퍼진다. 실험에 골몰하고 있는 이상욱 이사가 남성 4중창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져 있다고 했다. 웅장한 울림에 차곡차곡 쌓인 제품 박스들이 들썩거린다.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양조 공간으로 향한다. 바닥과 설비에서도 한강주조의 짙은 파랑이 구석구석 채워져 있다. 처음부터 브랜딩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양조장이야’라고 보여주는 건 없어요. 우리는 최대한 심플하게 표현하고 소비자는 맛을 즐기면 됩니다.
한강주조라는 브랜드는 관심이 생기면 생기는대로, 그렇지 않으면 술만 즐겨도 좋아요.”


서울땅에서 술을 만든다는 것

내부는 양조장 용도로 건축된 건물인 것처럼 짜임새가 있다. 비좁고 비싼 서울땅에서 서울의 정체성을 지키며 양조장을 꾸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 한강주조 양조장은 한 뼘도 허투루 낭비하는 곳이 없다.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방문하기는 어렵지만, 한강주조는 ‘서울의 막걸리’로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막걸리가 있을까. 나루생막걸리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서울 시민들도 이제는 로컬 막걸리를 찾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양조장을 나서자 성수동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구석구석 안 보이는 곳에서 에너지를 쏟는 이들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일거다. 삭막했던 건물이 더이상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떠나기가 아쉽다. 한강 나루로 향해야겠다. 물론 나루생막걸리 한 병을 들고.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