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베를린에서 나는 왜 한식을 먹는가

누루커스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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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서다희


연어에게만 회귀 본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을 향해 펄떡이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나의 입맛 또한 뿌리를 찾아 헤맨다. 하필이면 이곳, 베를린에서 말이다. 

오해 마시라. 입이 짧아 어딜 가든 한식만 고집하는 그런 사람 아니다. 여행 기자로 지낸 지난 10년 동안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온갖 산해진미를 탐했다. 그 나라와 그 도시의 문화를 혀끝으로 음미하는 것을 즐겼다. 허름한 노점에서부터 미쉐린 별이 반짝이는 레스토랑까지 바지런히 먹고 마셨다. 그리고 3년 전, 긴긴 여행을 멈추고 애정하던 도시 베를린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베를린으로 옮겨온 후에도 먹부림은 그칠 줄 몰랐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군침이 쥬르르 흐른다. 노이쾰른 바라(Barra, 온전한 행복감을 준 이 레스토랑& 내추럴 와인바는 다음에 소개한다)의 디시들을 제외하곤 김밥과 부침개, 김치, 명이 장아찌, 딸기 정과에 막걸리까지, ‘넥스트시티 베를린'이라는 계정이 무색할 만큼 한식 사진으로 그득하다.


베를린 한식당 쵸이 ⓒ서다희


자세히 보면 슈파겔(화이트 아스파라거스)을 주재료로 한 김밥, 독일의 꾀꼬리 버섯을 올린 부침개, 뮌헨에서 공수한 명이로 담근 장아찌 등 베를린 혹은 독일의 맛이 첨가되어 있지만, 아무튼 장르는 한식. 물론 베를린의 국제적 입맛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나는 한식이 좋다. 맛있고 건강하고 음식에 담긴 이야기도 풍부하고, 무엇보다도 내 몸에 맞으니까.


베를린은 한식을 먹고 살기에 꽤 괜찮은 도시다. 


적어도 독일에선 그렇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 뿐만 아니라 일반 아시아 수퍼마켓에서도 한국산 식료품을 찾을 수 있다. 한식당도 많다. 최근 몇년간 베를린에 한식 레스토랑이 급속도로 늘어났는데, 지난해 세어 본 것만으로 80여개에 이른다.

잠깐 베를린의 한식 붐에 대해 설명하자면, 한식이 베를린 푸드씬의 힙스터로 등장한 것은 2009년이었다. 중심가인 미테의 ‘얌얌 베를린(YamYam Berlin)’, 아티스트의 동네 크로이츠베르크의 ‘김치 공주(Kimchi Princesse)’가 오픈하면서다. 각각 패션, 연극계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2세 하수미, 영미 박 스노든은 젊은 감각의 한식으로 베를리너들을 사로잡았다.


베를린 치맥집 꼬끼오 ⓒ서다희


2013년 즈음엔 스트리트 푸드가 떠오르며 한식의 또 다른 변화가 일었다. 손치킨(Son Kitchen), 프로이라인 김치(Fräulein Kimchi)의 불고기 버거, 김치 타코 등 시장이나 축제의 가판대, 푸드 트럭에 어울리는 퓨전 한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온 실력가들이 좀더  전문적이고 다채로운 한식을 선보이고 있다. ‘고고기(Gogogi)’는 한옥 문짝, 자개 장식으로 꾸민 식탁, 서울의 풍경과 사람을 담은 흑백 사진 등 인테리어부터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김마나가 오픈한 곳으로 서울의 세련된 모던 한식당을 떠올리게 한다. 

‘꼬끼오 베를린(Kokio Berlin)’은 한국의 치맥 문화를 알리는 치맥펍이다. 최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최애 맛집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는데, 한국 그립지 않은 겉바속촉의 ‘KFC(코리안 프라이드 치킨)’로 유명하다. 남쪽 쇠네베르크에 위치한 ‘곳간(Gokan)’은 솥밥과 편백찜, 소고기 주물럭과 돼지 막창 등 내공이 돋보이는 신선한 메뉴를 더했다. 꼬끼오 베를린과 곳간의 오너는 한국에서 유명 식당과 바를 운영한 바 있다.


베를린 고추가루 ⓒ서다희


파인다이닝도 만날 수 있다. 2012년 문을 연 ‘고추가루(Kochu Karu)’는 스페인 타파스 식으로 재해석한 한식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베를린에서 한식을 타이틀로 내건 레스토랑 중 유일하게 미쉐린 빕 구르망을 받았으며 고미요 평점 15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쵸이 베를린(Choi Berlin)' 은 주목받는 뉴페이스다. 정통 한식과 현지 식재료 및 음식 문화를 진지한 고민과 세심한 정성으로 풀어낸 5가지 코스 요리를 낸다.

“자, 음식은 풍부한데, 우리술은?”

베를린에서 나의 새로운 여행을 이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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