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니 술을 다룬 책은 두 배로 좋아한다.
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소믈리에나 브루마스터가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술의 세계를 넓혀주는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소한 일상이나 몽글몽글한 추억을 술과 함께 녹여낸 글도 즐겨본다. 예를 들어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 같은 책 말이다. 김혼비 작가가 소주 병을 열어 첫 잔을 따를 때 “꼴꼴~” 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은 나머지 주문할 때 소주를 2병 시키고 한쪽 소주 병을 계속 채우면서 술을 따라 마신다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쳤다.
최근에는 ‘호로요이의 시간’이라는 단편소설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5인의 일본 여성 작가가 술을 매개로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을 전하는 소설이다. 일본어로 ‘살짝 취한다’는 뜻의 ‘호로요이(ほろよい)’는 낮은 도수에 달콤한 맛으로 인기 있는 츄하이(일본 소주와 탄산수를 혼합한 칵테일, ‘쇼추 하이볼’의 약칭이다) 브랜드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일본 여행 가면 꼭 사오는 쇼핑 목록에 빠지지 않는 술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니혼슈, 과실주, 칵테일, 맥주 등 다양한 술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것도 술인가 싶은 것이 하나 나온다. 바로, ‘초콜릿 봉봉’이다. 초콜릿 쉘 안에 위스키 등의 술을 넣은 것이다. 초콜릿인줄 알고 깨물었다가 치아 사이로 확 퍼지는 씁쓸한 알코올의 맛처럼, 이 소설은 초로의 이모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첫사랑을 찾아갔다가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된 조카의 이야기다.
초콜릿 봉봉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것이 생각났다. 술을 첨가한 커피다. 술만큼 좋아하는 게 또 커피다. 제주의 한 카페에서 ‘오렌지럼에스프레소’라는 메뉴가 있길래 호기심에 주문해보았다가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씁쓸한 에스프레소 커피와 상큼한 오렌지 럼으로 제주 감귤초콜릿의 맛을 낸 것이라고 하는데, 부담스럽지 않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였다. ‘럼(rum)’은 사탕수수즙이나 당밀을 발효한 후 증류한 술이다.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재활용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와 조합하는 술로 좀 더 널리 알려진 것은 ‘위스키’다.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가 대표적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커피로, 1942년 더블린 공항 라운지에서 미국인 승객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제공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아이리시 커피를 만드는 방법은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뜨거운 커피에 위스키와 설탕을 잘 섞은 후 생크림으로 뒤덮은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아이리시 커피에는 아이리시 위스키를 사용해야만 하며, 특히 스카치 위스키는 금기시된다고 한다. 브랜디를 사용하면 ‘로열 커피’로 이름이 바뀐다.
최근 제주에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커피 바가 몇 군데 생겼는데 이곳에서 커피와 위스키를 조합한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관덕정 길 건너에 자리한 ‘무슈부부커피스탠드’도 그중 하나다. 대표 메뉴인 ‘체리블러드’에는 버번위스키인 버팔로 트레이스가 10~15ml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주문하면 술이 들어가는데 괜찮냐고 꼭 물어본다. 원하지 않으면 위스키를 빼고도 만들어주지만 그러면 살짝 실망하는 주인장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위스키를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상큼달달한 체리셔벗과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 커피, 여기에 위스키의 바닐라 향이 더해져 한층 복합적인 풍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체리블러드를 마시고 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볍게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만 술에 취하고 만 것이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술이 좀 깨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낮술을 마신 양 머리가 멍하고 속 쓰림이 느껴졌다. 술 마신 다음날 마냥 해장라면 하나를 끓여 먹으면서 나의 주량을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일은 위스키를 맛있게 즐기는 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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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
술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니 술을 다룬 책은 두 배로 좋아한다.
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소믈리에나 브루마스터가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술의 세계를 넓혀주는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소한 일상이나 몽글몽글한 추억을 술과 함께 녹여낸 글도 즐겨본다. 예를 들어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 같은 책 말이다. 김혼비 작가가 소주 병을 열어 첫 잔을 따를 때 “꼴꼴~” 하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은 나머지 주문할 때 소주를 2병 시키고 한쪽 소주 병을 계속 채우면서 술을 따라 마신다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쳤다.
최근에는 ‘호로요이의 시간’이라는 단편소설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5인의 일본 여성 작가가 술을 매개로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을 전하는 소설이다. 일본어로 ‘살짝 취한다’는 뜻의 ‘호로요이(ほろよい)’는 낮은 도수에 달콤한 맛으로 인기 있는 츄하이(일본 소주와 탄산수를 혼합한 칵테일, ‘쇼추 하이볼’의 약칭이다) 브랜드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일본 여행 가면 꼭 사오는 쇼핑 목록에 빠지지 않는 술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니혼슈, 과실주, 칵테일, 맥주 등 다양한 술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것도 술인가 싶은 것이 하나 나온다. 바로, ‘초콜릿 봉봉’이다. 초콜릿 쉘 안에 위스키 등의 술을 넣은 것이다. 초콜릿인줄 알고 깨물었다가 치아 사이로 확 퍼지는 씁쓸한 알코올의 맛처럼, 이 소설은 초로의 이모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첫사랑을 찾아갔다가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된 조카의 이야기다.
초콜릿 봉봉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것이 생각났다. 술을 첨가한 커피다. 술만큼 좋아하는 게 또 커피다. 제주의 한 카페에서 ‘오렌지럼에스프레소’라는 메뉴가 있길래 호기심에 주문해보았다가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씁쓸한 에스프레소 커피와 상큼한 오렌지 럼으로 제주 감귤초콜릿의 맛을 낸 것이라고 하는데, 부담스럽지 않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커피였다. ‘럼(rum)’은 사탕수수즙이나 당밀을 발효한 후 증류한 술이다.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재활용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와 조합하는 술로 좀 더 널리 알려진 것은 ‘위스키’다.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가 대표적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커피로, 1942년 더블린 공항 라운지에서 미국인 승객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제공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아이리시 커피를 만드는 방법은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뜨거운 커피에 위스키와 설탕을 잘 섞은 후 생크림으로 뒤덮은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아이리시 커피에는 아이리시 위스키를 사용해야만 하며, 특히 스카치 위스키는 금기시된다고 한다. 브랜디를 사용하면 ‘로열 커피’로 이름이 바뀐다.
최근 제주에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커피 바가 몇 군데 생겼는데 이곳에서 커피와 위스키를 조합한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관덕정 길 건너에 자리한 ‘무슈부부커피스탠드’도 그중 하나다. 대표 메뉴인 ‘체리블러드’에는 버번위스키인 버팔로 트레이스가 10~15ml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주문하면 술이 들어가는데 괜찮냐고 꼭 물어본다. 원하지 않으면 위스키를 빼고도 만들어주지만 그러면 살짝 실망하는 주인장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위스키를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상큼달달한 체리셔벗과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 커피, 여기에 위스키의 바닐라 향이 더해져 한층 복합적인 풍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체리블러드를 마시고 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볍게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만 술에 취하고 만 것이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술이 좀 깨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낮술을 마신 양 머리가 멍하고 속 쓰림이 느껴졌다. 술 마신 다음날 마냥 해장라면 하나를 끓여 먹으면서 나의 주량을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일은 위스키를 맛있게 즐기는 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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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