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마시는 세상 ]사케를 만드는 여행. 구라비토 스테이 체험기_1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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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노현 사쿠에 도착한 날은 게으른 추위가 볕을 피해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겨울은 문턱에 발을 걸치고 커다란 봄기운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버티는 것 같았다. 산 위에도, 거리에도 채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앉아 있었고, 벚꽃은 아직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쿠라비토 스테이는 도쿄 우에노역에서 신칸센(편도6250엔)으로 약 1시간 20분 거리에 위치한 사쿠시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5시에 체크인을 하고 2박3일간 사케의 길에 동행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19대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타이라 이데 대표부터 스탭들의 소개가 차례로 이어졌다. 참가자는 한국인 3명, 대만인 1명, 일본인 4명으로, 일본 분들은 양조장에 오실 만큼 술을 사랑하고 유쾌한 분들이었다.



  프로그램은 외국인에게는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스탭들과 참가하신 일본 분들 모두 영어가 유창해 일정 내내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양조장을 개조한 숙소는 호텔처럼 거창하진 않았지만 나무향이 가득 퍼지는 아늑한 곳이었다. 사실 사케에 대한 열정 앞에서 그런 것쯤은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참가자 모두가 그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지 마지막 날까지 불편해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녁 식사는 양조장 근처의 로컬 레스토랑 ‘레몬’에서 근사한 제철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양조장 대표님과 오랜 친구라는 셰프님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마을에 대한 애착과 지역의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남달랐다. 일주일 주기로 메뉴를 재구성한다는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른 봄 미리 꽃이 핀 듯한 요리들은 화려한 색감 속에서도 정갈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음식이 입에 닿는 순간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 양조장에서 생산된 3종의 니혼슈도 페어링하여 더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못내 아쉬웠는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사케는 무한 제공되니 술걱정은 없다. 편의점에서 사온 안줏거리를 펼쳐 놓고 준마이 다이긴죠를 포함해 10종이나 되는 니혼슈를 원 없이 마셨다. 술이 들어가니 깊은 이야기도 오갔다. 가장 쾌활하고 유머가 넘쳤던 미키는 미국 애틀랜타에 살며 현지에서 돌아가신 일본인의 자산과 유품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묵직한 죽음의 무게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유쾌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화는 깊은 밤 속으로 빠져 들었고, 외딴 곳에서의 낯선 여행은 차분히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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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