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술이라고]6. 논알코올 와인과의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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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선


  논알코올 맥주 다음은 논알코올 와인이다. 와인에도 논알코올이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그거 포도주스 아니냐?”는 것이다. 이해한다. 논알코올의 세계를 접하기 전에는 나도 똑같이 말했을 테니까.


  과거에는 포도주스에 탄산수를 섞은 것이 논알코올 와인으로 둔갑해 판매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논알코올 시장이 생겨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드는 방법과 동일하게 포도즙을 발효한 후 알코올 성분을 빼내는 방식으로 논알코올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알코올을 제거하는 방식도 진화해서 와인을 원심 분리해서 각 성분을 분해한 후 알코올 없이 재결합하는 ‘스피닝 콘(Spinning Cone)’, 매우 낮은 압력과 온도에서 알코올을 추출하는 ‘진공 증류’ 등을 통해 와인의 풍미를 잃지 않은 논알코올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1]

 

  논알코올 와인 입문은 ‘스파클링 와인’이다. 

  술이 약한 사람도 스파클링 와인 한두 잔은 마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탄산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 중에는 알코올 도수가 5~6도 정도로 세지 않은 것도 있고, 보통 어느 정도 당도가 있다. 알코올에 대한 비중이 높지 않으니 알코올을 제거하더라도 괴리감이 적으면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거품과 산뜻하고 달콤한 맛, 화사한 향이 살아 있는 논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첫 모금에 너무 잘 구현되어 깜짝 놀랐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거나 임산부라면 논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이 큰 위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는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그냥 와인도 한두 잔은 마실 수 있고 도수가 낮은 스파클링 와인도 있는데 굳이 논알코올로 마실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 이정선


  하지만 ‘탄산이 없는’ 논알코올 와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레드 와인 품종인 카베르네 쇼비뇽, 피노누아, 템프라니요, 화이트 와인 품종인 샤르도네, 리슬링, 피노 그리지오 등 논알코올 와인의 종류가 생각보다 더 다양했다. 특히, 알코올이 제거된 후에도 레드 와인의 탄탄한 바디감이 잘 구현될 수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테이스팅 노트와 구매 후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신중하게 와인을 골랐다. 적당한 탄닌과 진득한 향, 산미와 밸런스가 좋다는 평이 있는 레드 와인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며칠 후 바다를 건너 와 내 품에 안긴 논알코올 와인을 보니 기대감이 한껏 치솟았다. 투명한 루비 색으로 잔에 예쁘게 담긴 논알코올 와인의 첫 모금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띵해졌다. 이건 포도주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와인도 아니다. 아니,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와인은 이렇지 않다. 알코올이 추출된 와인의 약한 바디감이 두드러졌고, 포도즙이 발효되다가 만 것 같이 포도의 풍미가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당도와 산미가 적당해서 음식과 함께 먹으니 잘 어우러지는 편이었다.

  

ⓒ 이정선


  기대가 커서 실망이 큰 것이었을까? 그렇지만 이대로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단골 와인 전문매장을 가서 논알코올 와인을 다시 사보기로 했다. 그런데, 몇 주 만에 방문한 와인 매장이 좀 달라져 있었다. 이곳의 첫 번째 선반 코너에는 힙한 라벨링으로 한껏 개성을 뽐내던 값비싼 내추럴 와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코너에서 와인을 구입한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매번 라벨링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여기가 ‘9,900원 이하’의 가성비 와인, 1~2만원 대의 ‘Daily’ 와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얼어 붙은 경기와 물가 상승의 여파로 꽉 닫힌 지갑 사정이 와인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논알코올 와인을 마시고 실망이 컸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논알코올 와인은 대체로 비싸다. 평균적으로 내가 마시던 와인 가격의 1.5~2배 정도다. 그 가격이면,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것이다. 논알코올 와인 코너를 슬쩍 보다가 말고 다른 쪽으로 가서 1만원 대의 리슬링 와인 한 병을 집어 계산대에 올렸다. 논알코올 와인과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첫 만남은 원래 그런 법이다.nurukers

 


[1] 참고 사이트: 마켓노드 https://marketn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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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