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마시는 세상 ][어나더 라운드] 내 안에 숨어있는 연출가의 정체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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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극과 비극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불현듯 내 삶이 연출된 극이 아닐까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취기에 내 감정을 마주했을 때가 그렇다. 모든 장면이 극적으로 보이고 나는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된 것처럼 과장된 행동으로 관객을 설득하려 한다.


  술은 우리의 감정을 끌어 올려 우울할 땐 끝 모를 어둠의 심연으로 빠뜨리고, 기쁠 땐 무한한 환희로 가득 차게 만든다. 부풀어 오른 감정은 매 순간을 연출한다. 술이라는 액체는 그런 점에서 내 안에 상주하는 연출가를 깨우는 각성제와 같다. 물론 이 감독님은 단기 근무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오래 호출할 경우 각종 부작용이 따른다.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그 연출가를 깨워 눈 앞에 오래 세워두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일상이 무료한 네 명의 교사 친구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활기와 창의성이 상승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몸소 실험에 나선다. 적당한 술이 기분을 좋게 하고 용기와 에너지를 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순간적인 쾌감이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또한 그 쾌감에 일상을 의탁하는 것을 알코올 중독이라 부르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탈색된 인생의 빛깔을 되찾고 싶었던 주인공 일행은 실험이라는 명목 아래 스스로 중독의 길에 발을 들인다. 0.05%의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술을 마신다. 늘 축축했던 그들의 삶은 일시적으로 빛을 내며 불타오르지만 예상되듯 금세 재가 되어 허물어진다. 환희는 이내 우울이 된다. 그리고 술은 다시 축제의 도구가 되어 춤을 추게 만든다.



 

 영화는 술에는 죄가 없고 결국 모든 일의 근원은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웃고 울고 춤추는 것은 사람이고, 술은 그 원동력을 잠시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극을 만드는 연출가는 그 무엇도 아닌 나의 감정이고, 그 자체가 곧 삶이라는 것.  



술은 기쁨도 슬픔도 만들어 주지 않지만 감정을 증폭시켜 지금 나의 상태를 직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감정의 과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연출가가 쓰러지는 순간 주체는 혼란과 망각으로 채워진다. 감정도, 술도, 호기심(?)도 적당히가 관건임을 알려주는 영화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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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