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산책]술자리의 영양가는 4의 전후로 나뉜다.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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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병우

 왁자한 술자리가 끝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 묘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나는 이 술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가. 우리의 대화는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이 시간은 서로에게 무엇이 이로웠는가. 하면서 귀갓길 바닥을 눈으로 훑으며 쓸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불현듯 술자리의 영양가를 결정짓는 기준을 산술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건 인원수에 따라 경청의 밀도가 달라지는 현상인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명: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지만 어느새 넷플릭스에 집중하고 있다.

2명: 서로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왠지 모르게 많은 경우 결론이 서글픈 쪽으로 흘러간다.

3명: 서로의 에피소드를 순번대로 발언한다. 두 명이 호응하니 어떤 말이든 자연스럽게 나온다.

4명: 꼭 한 명은 휴대폰을 보고 있다. 김이 빠진다.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래 보이지 않는다.

5명: 둘씩 셋씩 짝지어 다른 이야기를 한다. 테이블 잡기도 어려운데 한자리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보다시피 경계의 숫자는 넷이다. 네 명이 되는 순간 위태로운 장면이 간간히 연출된다.


장면1: 휴대폰을 하던 사람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면 괜시리 의식하게 되고 역시나 먼저 자리를 뜬다. 아주 짧게 정적이 머물다 간다. 남은 사람들은 표정으로 머쓱함을 주고받는다.

장면2: 객관적으로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편을 가르기 시작한다. 대결구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갈등이 격화되었다가 누그러드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자리가 불편해진다.

장면3: 대화의 티키타카 순서를 못기다리고 남이 말하는 중에 난입하는 사람이 생긴다.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난 타이밍에 화제가 전환될까 불안해 일단 끼어들고 본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즐거우면 그만이지 무슨 술자리에서 의미를 찾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래도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기회인데 휘발성 농담으로 점철하기보다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정이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훨씬 가치있는 술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돈도 시간도 귀한 현대 사회에서 유흥만을 위한 술자리는 너무 허무하고 지치는 일이 아닌가.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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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