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소나기가 세상을 한 번 훔치고 지나가면 마음의 땟물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아스팔트 자갈 틈새에 고여 있던 매연도, 가로등 위에 쌓여 있던 흙먼지도 주르륵 흘러 말끔해진다.
퇴근길의 빗줄기는 질척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쾌하다. 버스가 물웅덩이를 지나며 튀기는 빗물 소리도 청량한 음악처럼 들린다.
ⓒ진병우 ⓐnurukers
편의점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지나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밤이 깊어질 수록 눈빛은 더 밝아진다. 비가 지나가기만 기다렸던 사람들은 서둘러 나와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쳤던 소나기가 언제 다시 마음을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병우 ⓐnurukers
편의점에는 평범한 하루를 위해 꼭 필요한 것만 판다. 대용량 개구리표 세제도, 싱싱한 채소나 과일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무언가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편의점에 있다. 아무리 작은 편의점이라도 술이 없는 경우는 없다. 술은 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일상의 필수품이다.
밤 손님은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혹은 마실 수 있는 것을 산다. 모자를 푹 눌러쓴 손님은 봉지 하나를 아끼기 위해 맥주 두 캔은 주머니에 넣고 두 캔은 양손에 들고 문을 어깨로 밀며 나온다. 별다른 안주는 없어 보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청년은 막걸리 한 병과 종이컵을 들고 빈 테이블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의자의 빗물을 손으로 털어낸다. 무슨 일인지 표정이 어둡다. 흠뻑 젖은 은행잎이 툭툭 떨어져 자전거 탄 사람의 어깨 위로 떨어진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아저씨는 그저 문 앞을 지나쳐 간다.
ⓒ진병우 ⓐnurukers
내가 좋아하는 술을 사서 편의점 불빛을 조명삼아 앉아 있으면 여유란 이런 곳에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겐 내가 잊고 있던 삶의 형태가 있다. 끌려가는 발걸음은 잘 버텼다 말해주고 쳐진 어깨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서 안심하는 듯하다. 술이 현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일을 위한 위로가 될 수는 있기를. 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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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세상을 한 번 훔치고 지나가면 마음의 땟물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아스팔트 자갈 틈새에 고여 있던 매연도, 가로등 위에 쌓여 있던 흙먼지도 주르륵 흘러 말끔해진다.
퇴근길의 빗줄기는 질척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쾌하다. 버스가 물웅덩이를 지나며 튀기는 빗물 소리도 청량한 음악처럼 들린다.
ⓒ진병우 ⓐnurukers
편의점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지나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밤이 깊어질 수록 눈빛은 더 밝아진다. 비가 지나가기만 기다렸던 사람들은 서둘러 나와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쳤던 소나기가 언제 다시 마음을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병우 ⓐnurukers
편의점에는 평범한 하루를 위해 꼭 필요한 것만 판다. 대용량 개구리표 세제도, 싱싱한 채소나 과일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무언가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편의점에 있다. 아무리 작은 편의점이라도 술이 없는 경우는 없다. 술은 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일상의 필수품이다.
밤 손님은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혹은 마실 수 있는 것을 산다. 모자를 푹 눌러쓴 손님은 봉지 하나를 아끼기 위해 맥주 두 캔은 주머니에 넣고 두 캔은 양손에 들고 문을 어깨로 밀며 나온다. 별다른 안주는 없어 보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청년은 막걸리 한 병과 종이컵을 들고 빈 테이블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의자의 빗물을 손으로 털어낸다. 무슨 일인지 표정이 어둡다. 흠뻑 젖은 은행잎이 툭툭 떨어져 자전거 탄 사람의 어깨 위로 떨어진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아저씨는 그저 문 앞을 지나쳐 간다.
ⓒ진병우 ⓐnurukers
내가 좋아하는 술을 사서 편의점 불빛을 조명삼아 앉아 있으면 여유란 이런 곳에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겐 내가 잊고 있던 삶의 형태가 있다. 끌려가는 발걸음은 잘 버텼다 말해주고 쳐진 어깨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서 안심하는 듯하다. 술이 현실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일을 위한 위로가 될 수는 있기를. 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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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