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한국엔 술집이 없다

누루커스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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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atharva_tulsi


영혼을 쏟아 붓고 뇌가 텅 비어 버린 밤, 홀로 귀가하다 보면 딱 한 잔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만히 앉아서 딱 한 잔. 직접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미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는 공간에서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필요 없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혼자 딱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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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음식점이라 요리를 주문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 갈 수 있는 술집은 없다. 간단한 술 한 잔도 없다. 술과 음식은 자석처럼 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난 그저 술 한 잔을 원했을 뿐인데. 음식은 무겁거나 말라 비틀어졌거나 둘 중 하나다. 요리를 먹자니 잠든 위장을 깨워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 같고, 마른안주는 질겅질겅 씹고 있자면 시체에서 즙을 짜 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쾌하다. 씹히고 있는 그것이 내 멘탈 같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냥 술 한 잔만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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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는 병으로만 주문 가능합니다.


40도 소주 500ml를 혼자 마시라니. 임꺽정 정도가 아니면 혼자서는 오지 말라는 소리인가. 막걸리는 기본이 750ml이니 목축이러 왔다가 우물에 빠지는 셈이다. 위스키도 잔으로 팔고, 사케도 도쿠리가 있고, 맥주도 다양한 사이즈가 있는데 한국술은 왜 꼭 통째가 아니면 안되는지. 그저 한 잔이 고픈 나는 K-음주에 주눅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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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


BTS다. 월드스타인 건 알겠다. 나도 그들이 자랑스럽다. 그래도 한 밤중에 다이너마이트는 좀 그렇다. 이어서 힙합 음악이 고막을 때린다. 왜 화가 난 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친 욕을 쏟아 낸다. 내 마음에 차분한 위로를 주고 싶었는데 심장마비가 올 것만 같다. 강렬한 비트에 막걸리의 효모도 놀랐을 것 같다. 어둡고 고요한 곳에서 묵묵히 자라왔는데 세상에 나와보니 조용할 날이 없다. 내 안의 나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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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띵동. 띵동…


분주하다. 차갑다. 공허하다. 취한 이들의 대화는 크고 날카롭다. 밝고 널찍한 공간에 줄 맞춰 배치된 테이블과 그 위에 비슷비슷한 술들. 난 바둑판 위에 놓인 무채색 바둑돌이다. 개성도, 존재감도 없는 흑백의 둥근 돌멩이. 이곳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희고 정갈한 벽면 또는 텅 빈 허공만 보인다. 이곳에선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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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은 술을 마시는 곳이다. 술이 주인공이 되고, 술이 가진 기능을 전부 이용할 수 있는 곳. 집과 일터 사이의 어딘가, 삶과 투쟁 중간 즈음 감정을 보듬는 공간. 이것이 마트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도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엔 술집이 없다. 술집 문화가 없다. 치킨집 혹은 치킨집을 닮은 음식점뿐이다. 마음을 편하게 뉘일 곳이 없다. 오늘도 한층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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