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산책]산은 왜 술을 부르는가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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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우


  산에 가면 이상하게도 막걸리가 마시고 싶다. 다른 술은 안된다. 꼭 막걸리여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공감할 것이다. 막걸리에 대한 끌림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분명 운동에 대한 일념으로 출발했지만, 등산길 초입에서 거부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해 막걸리만 먹고 돌아온 적이 있다. 아마도 산이라는 이미지에 심어진 심리적 기폭제가 이 요소를 깨우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산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알고리즘을 통해 반사적으로 막걸리가 연상된다면, 한 번 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엔 산하면 막걸리가 떠오르는 이유를 비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1. 허기진 배에 탄수화물을 보충하고 싶어서

  • 갈증과 허기짐을 한 번에 해결하는 ‘쌀’로 만든 막걸리만 한 것이 없다.

2.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고 싶어서

  • 바람도 나무도 새도 취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3. 동행인과 연대감을 쌓고 싶어서

  • 함께 고지를 올랐으면 이제 전우인 것이다.

4. 등산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 운동으로 근육이 뭉쳤을테니 풀어주어야 한다.

5. 등산의 또다른 목적이 있어서

  • 막걸리의 탄산은 사랑을 닮았다. 마실 땐 상큼하지만 금방 시큼한 냄새로 되돌아온다.

6. 그냥 술이 마시고 싶어서

  •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정보는 보건복지콜센터(129)


  사실 산에서 마시는 술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경사진 길, 평탄하지 않은 지형, 낭떠러지 등 환경요소 뿐만 아니라 땀을 많이 흘리면 탈수가 일어나 알코올 흡수량이 높아진다. 이에 더해 막걸리는 묘하게도 다른 술에 비해 빨리 취기가 올라오는데(경험임. 과학적 근거는 물론 없다.) 더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막걸리 붐이 일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동시에 등산 역시 국민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과거엔 어르신의 향기가 풍기는 영역이었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힙한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의 조합이 돋보이지만 마음으로만 즐기는 편을 추천한다. 선택의 문제를 떠나 자신의 목숨을 아낀다면 말이다. 아니면 거꾸로 집에서 막걸리를 산처럼 쌓아서 마시는 건…

그래도 참을 수 없다면 무알콜 막걸리를 챙겨가 즐겨보도록 하자.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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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