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곳의 양조장을 취재해서 책과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술술술술-전국 술도가 50 유랑기>, 일명 ‘술술 프로젝트’이다. 주로 우리 땅에서 난 농산물로 막걸리, 증류주, 와인, 맥주 등을 만드는 전국의 양조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술을 새롭게 발견한 작업이었다.
이 중 논알코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것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제주’에서였다. 당시에는 그저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로 넘겼지만 논알코올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그게 번뜩 생각났다.
논농사가 주축인 이 땅은 예로부터 ‘쌀’로 만든 술이 근본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와 외떨어진 화산 섬 제주에서는 물을 가둬두기 힘든 지질 특성 상 논농사가 쉽지 않았다. 조와 보리가 주식이었고 이걸로 술도 빚었다. 좁쌀로 둥글 납작하게 술떡(오메기떡)을 만들어서 누룩과 함께 발효한 ‘오메기술’, 그리고 이를 증류해서 만든 ‘고소리술’이다.
귀하디 귀한 쌀밥은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니 아무리 쉬어서 못 먹기 바로 직전인 쌀밥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약간 쉬기 시작한 밥에 물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마셨는데, 이게 바로 제주 섬사람들의 논알코올 음료인 ‘쉰다리’다. 새콤하고 단 맛이 나는 쉰다리는 음식이 상하기 쉬운 여름에 주로 많이 만들어 먹었던 계절 음료이기도 하다.
쉰다리와 같은 논알코올 쌀술이 일본에도 있다. ‘감주(甘酒)’라고도 번역되는 ‘아마자케(あまざけ)’다. 한국에서 아마자케를 ‘일본식 식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엿기름 물로 만드는 식혜와 달리 아마자케는 누룩을 사용한다. 식혜보다는 쉰다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더욱이 아마자케를 마시는 계절을 흔히 겨울로 알고 있지만 사실 여름 음료라고 한다. 일본에서 새해에 사찰이나 신사에서 참배객에게 따뜻하게 데운 아마자케를 대접하다 보니 겨울에 주로 마신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과거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에 영양을 보충해 주던 여름 건강 음료로 아마자케를 즐겼다는 것이다.
요즘 ‘쉰다리’는 제주 전통 건강 음료로 많이 홍보되고 있는 듯하다. 제주 서귀포에 자리한 양조장 ‘제주곶밭’에서는 쌀로 만든 요거트라는 의미의 ‘쌀거트’라는 이름으로 쉰다리를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마침 제주곶밭이 제주올레길 9코스와도 가까워 가는 길에 들러 보았다. 제주곶밭은 제주 감귤, 메밀 등 제주 특산품으로 만든 탁주와 청주 등을 만들면서 양조 클래스도 운영하는 곳이다. 제주곶밭의 술 세 종류를 시음하고 쌀거트를 구입한 후 안덕계곡 쪽으로 향했다.
걷다가 출출해서 꺼내 마신 쌀거트는 쌀과 누룩, 물만으로 만들어 쌀의 슴슴한 단맛이 잘 느껴지면서 농후하고 걸쭉한 목넘김으로 색다른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음료였다. 그리고 익숙한 누룩 향에서 과거 산행 후 마셨던 수많은 막걸리 병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걷는 중에 마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취하지 않으면서 꽤나 든든해서 다음 올레길에도 괜찮은 동반자가 될 것 같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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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
국내 50곳의 양조장을 취재해서 책과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술술술술-전국 술도가 50 유랑기>, 일명 ‘술술 프로젝트’이다. 주로 우리 땅에서 난 농산물로 막걸리, 증류주, 와인, 맥주 등을 만드는 전국의 양조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술을 새롭게 발견한 작업이었다.
이 중 논알코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것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제주’에서였다. 당시에는 그저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로 넘겼지만 논알코올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그게 번뜩 생각났다.
논농사가 주축인 이 땅은 예로부터 ‘쌀’로 만든 술이 근본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와 외떨어진 화산 섬 제주에서는 물을 가둬두기 힘든 지질 특성 상 논농사가 쉽지 않았다. 조와 보리가 주식이었고 이걸로 술도 빚었다. 좁쌀로 둥글 납작하게 술떡(오메기떡)을 만들어서 누룩과 함께 발효한 ‘오메기술’, 그리고 이를 증류해서 만든 ‘고소리술’이다.
귀하디 귀한 쌀밥은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니 아무리 쉬어서 못 먹기 바로 직전인 쌀밥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약간 쉬기 시작한 밥에 물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마셨는데, 이게 바로 제주 섬사람들의 논알코올 음료인 ‘쉰다리’다. 새콤하고 단 맛이 나는 쉰다리는 음식이 상하기 쉬운 여름에 주로 많이 만들어 먹었던 계절 음료이기도 하다.
쉰다리와 같은 논알코올 쌀술이 일본에도 있다. ‘감주(甘酒)’라고도 번역되는 ‘아마자케(あまざけ)’다. 한국에서 아마자케를 ‘일본식 식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엿기름 물로 만드는 식혜와 달리 아마자케는 누룩을 사용한다. 식혜보다는 쉰다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더욱이 아마자케를 마시는 계절을 흔히 겨울로 알고 있지만 사실 여름 음료라고 한다. 일본에서 새해에 사찰이나 신사에서 참배객에게 따뜻하게 데운 아마자케를 대접하다 보니 겨울에 주로 마신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과거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에 영양을 보충해 주던 여름 건강 음료로 아마자케를 즐겼다는 것이다.
요즘 ‘쉰다리’는 제주 전통 건강 음료로 많이 홍보되고 있는 듯하다. 제주 서귀포에 자리한 양조장 ‘제주곶밭’에서는 쌀로 만든 요거트라는 의미의 ‘쌀거트’라는 이름으로 쉰다리를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마침 제주곶밭이 제주올레길 9코스와도 가까워 가는 길에 들러 보았다. 제주곶밭은 제주 감귤, 메밀 등 제주 특산품으로 만든 탁주와 청주 등을 만들면서 양조 클래스도 운영하는 곳이다. 제주곶밭의 술 세 종류를 시음하고 쌀거트를 구입한 후 안덕계곡 쪽으로 향했다.
걷다가 출출해서 꺼내 마신 쌀거트는 쌀과 누룩, 물만으로 만들어 쌀의 슴슴한 단맛이 잘 느껴지면서 농후하고 걸쭉한 목넘김으로 색다른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음료였다. 그리고 익숙한 누룩 향에서 과거 산행 후 마셨던 수많은 막걸리 병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걷는 중에 마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취하지 않으면서 꽤나 든든해서 다음 올레길에도 괜찮은 동반자가 될 것 같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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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