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올 때 밤막걸리 좀 사다줘.”
얼마 전 나솔사계(나는솔로 사랑은 계속된다 : 나는 솔로의 스핀오프 버전)에서 한 출연자가 외부로 데이트를 나간 다른 출연자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별안간 그들이 귀여웠다. 출연진들이 호감이어서도 아니고, 내가 밤막걸리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옆에서 TV를 보고 있던 이과장에게 말했다.
“우리도 오늘은 밤 막걸리 사먹자.”
이과장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봤다.
가향 막걸리를 안 좋아한다. 양조사라서 ‘막걸리란 이래야지!’하는 근본주의적인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취향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고 지난 날을 돌이켜 봐도 음주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가향이 된 술을 좋아한 적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향’은 합성착향료로 향을 더했다는 뜻이다. 참, 엄밀히 말하자면 ‘가향 막걸리’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여기에서 양조사가 말아주는 깨알 상식. 주세법 상, 합성착향료를 사용한 막걸리는 ‘탁주(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따라서, 흔히 우리가 바나나 막걸리, 밤 막걸리나 복숭아 막걸리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술의 라벨을 잘 살펴보면 막걸리라는 표기가 없다.
탁주와 기타주류는 적용되는 세율이 다르다. 탁주는 L당 44.4원, 기타주류는 출고가의 30%로 큰 차이가 있다. 관련하여 탁주 시장의 외연 확장과 성장을 위해 가향된 막걸리도 탁주로 인정하여 세금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과 한국의 전통주인 탁주의 근본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업계 내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아무튼, 집 앞 이마트에 도착했다. 주류 매대를 살펴본다. 상온 매대 가장 아랫칸에 밤막걸리가 있다. 지금 가장 핫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제나 찾는 이들이 있는 술이라는 뜻이다. ‘톡 쏘는 알밤동동’ (주)우리술에서 만들었다. 우리가 밤 막걸리라고 먹는 대부분의 제품이 이 곳의 막걸리일 것이다. 이 외에 ‘가평 잣 막걸리’도 이곳의 대표적인 술 중 하나다. 생소할 수도 있지만, ‘막걸리로 온 세상을 즐겁게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25개국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고도화된 ‘살균’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막걸리는 효모가 살아있어서 만들어내는 매력(탄산, 다이나믹한 풍미)이 압도적인 술이기에, 살균을 하면서 품질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점이 막걸리 유통과 성장에 가장 큰 허들이다. 그러나 적절한 살균 과정을 거친 막걸리는, 생막걸리보다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우리술은 그런 점에서 숨은 강자이자 고수같은 회사다. 그나저나, 국순당이랑 해태가 콜라보한 ‘바밤바 막걸리(바밤바밤)’은 없네. 알밤동동이랑 비교하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톡 쏘는 알밤동동’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수육을 삶는다. 수육이 삶아지는 한 시간 동안 알밤동동은 차가워질 것이고, 알밤동동이 차가워지는 동안 수육은 보드랍고 쫀득하게 익어갈 것이다. 기대와 기대가 만나 곱절로 행복감이 상승한다. 그 동안 마트에서 사왔던 보쌈김치도 한입거리로 짤라 아끼는 그릇에 나름대로 모양을 잡아 올린다.
이과장은 넷플릭스를 켜고 막걸리와 페어링할 콘텐츠를 고른다. “금쪽같은 내새끼..? 아냐 이건 마치 퇴근했는데, 회사에서 일하는 다큐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잖아. 너무 작품성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경박하지 않은 그런… 아니 그냥 유튜브 볼까?” 혼잣말인지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모를 말을 웅얼거린다. 나는 찬장을 뒤적인다. 막걸리 잔이 따로 없어, 그나마 사발 비슷한 선물받은 비싼 찻잔을 꺼낸다. 이 찻 잔을 만든 작가님과 선물해주신 분께 결례인지 아닌지 쓸 데없는 이야기로 옥신각신 하는 새에 수육이 완성됐다. 이과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장고를 열어 충분히 시원해진 ‘톡 쏘는 알밤동동’을 꺼내 한 손은 허리에 뒷짐을 지고, 한 손은 막걸리 병의 하단부를 잡고 소믈리에처럼 막걸리를 따른다. 짠!
가향막걸리에 대한 나의 선호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치만 밤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귀여워보였는지 깨달았다. 밤이라는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 막걸리에 깃든 사소한 비일상성. 밤막걸리를 마시며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만족감. 이과장의 반짝이는 눈빛, 함께 나누는 웃음소리.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가장 귀여운 모습이 아닐까. 이후로 가끔씩 냉장고에 밤막걸리를 채워 넣는다.
그 달콤한 맛과 함께, 그 안에 담긴 귀여운 순간들을 기대하며.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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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
“들어올 때 밤막걸리 좀 사다줘.”
얼마 전 나솔사계(나는솔로 사랑은 계속된다 : 나는 솔로의 스핀오프 버전)에서 한 출연자가 외부로 데이트를 나간 다른 출연자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별안간 그들이 귀여웠다. 출연진들이 호감이어서도 아니고, 내가 밤막걸리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옆에서 TV를 보고 있던 이과장에게 말했다.
“우리도 오늘은 밤 막걸리 사먹자.”
이과장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봤다.
가향 막걸리를 안 좋아한다. 양조사라서 ‘막걸리란 이래야지!’하는 근본주의적인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취향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고 지난 날을 돌이켜 봐도 음주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가향이 된 술을 좋아한 적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향’은 합성착향료로 향을 더했다는 뜻이다. 참, 엄밀히 말하자면 ‘가향 막걸리’는 존재할 수 없는 단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여기에서 양조사가 말아주는 깨알 상식. 주세법 상, 합성착향료를 사용한 막걸리는 ‘탁주(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따라서, 흔히 우리가 바나나 막걸리, 밤 막걸리나 복숭아 막걸리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술의 라벨을 잘 살펴보면 막걸리라는 표기가 없다.
탁주와 기타주류는 적용되는 세율이 다르다. 탁주는 L당 44.4원, 기타주류는 출고가의 30%로 큰 차이가 있다. 관련하여 탁주 시장의 외연 확장과 성장을 위해 가향된 막걸리도 탁주로 인정하여 세금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과 한국의 전통주인 탁주의 근본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업계 내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아무튼, 집 앞 이마트에 도착했다. 주류 매대를 살펴본다. 상온 매대 가장 아랫칸에 밤막걸리가 있다. 지금 가장 핫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제나 찾는 이들이 있는 술이라는 뜻이다. ‘톡 쏘는 알밤동동’ (주)우리술에서 만들었다. 우리가 밤 막걸리라고 먹는 대부분의 제품이 이 곳의 막걸리일 것이다. 이 외에 ‘가평 잣 막걸리’도 이곳의 대표적인 술 중 하나다. 생소할 수도 있지만, ‘막걸리로 온 세상을 즐겁게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25개국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고도화된 ‘살균’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막걸리는 효모가 살아있어서 만들어내는 매력(탄산, 다이나믹한 풍미)이 압도적인 술이기에, 살균을 하면서 품질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점이 막걸리 유통과 성장에 가장 큰 허들이다. 그러나 적절한 살균 과정을 거친 막걸리는, 생막걸리보다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우리술은 그런 점에서 숨은 강자이자 고수같은 회사다. 그나저나, 국순당이랑 해태가 콜라보한 ‘바밤바 막걸리(바밤바밤)’은 없네. 알밤동동이랑 비교하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톡 쏘는 알밤동동’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수육을 삶는다. 수육이 삶아지는 한 시간 동안 알밤동동은 차가워질 것이고, 알밤동동이 차가워지는 동안 수육은 보드랍고 쫀득하게 익어갈 것이다. 기대와 기대가 만나 곱절로 행복감이 상승한다. 그 동안 마트에서 사왔던 보쌈김치도 한입거리로 짤라 아끼는 그릇에 나름대로 모양을 잡아 올린다.
이과장은 넷플릭스를 켜고 막걸리와 페어링할 콘텐츠를 고른다. “금쪽같은 내새끼..? 아냐 이건 마치 퇴근했는데, 회사에서 일하는 다큐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잖아. 너무 작품성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경박하지 않은 그런… 아니 그냥 유튜브 볼까?” 혼잣말인지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모를 말을 웅얼거린다. 나는 찬장을 뒤적인다. 막걸리 잔이 따로 없어, 그나마 사발 비슷한 선물받은 비싼 찻잔을 꺼낸다. 이 찻 잔을 만든 작가님과 선물해주신 분께 결례인지 아닌지 쓸 데없는 이야기로 옥신각신 하는 새에 수육이 완성됐다. 이과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장고를 열어 충분히 시원해진 ‘톡 쏘는 알밤동동’을 꺼내 한 손은 허리에 뒷짐을 지고, 한 손은 막걸리 병의 하단부를 잡고 소믈리에처럼 막걸리를 따른다. 짠!
가향막걸리에 대한 나의 선호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치만 밤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귀여워보였는지 깨달았다. 밤이라는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 막걸리에 깃든 사소한 비일상성. 밤막걸리를 마시며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만족감. 이과장의 반짝이는 눈빛, 함께 나누는 웃음소리.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가장 귀여운 모습이 아닐까. 이후로 가끔씩 냉장고에 밤막걸리를 채워 넣는다.
그 달콤한 맛과 함께, 그 안에 담긴 귀여운 순간들을 기대하며.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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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