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술이라고]8. 논알코올 하이볼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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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초의 일이다.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선배이자 절친이 된 M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 출장 또 언제 가냐고, 혹시 뭐 좀 사다 줄 수 있냐는 거였다. 평소 이런 부탁을 잘 하지 않는 M이었기에 신기해 하며 말 해보라고 했다. ‘산토리 위스키’였다.


  정확한 명칭은 산토리 위스키 ‘가쿠빈(角瓶)’. 작년 한 해 국내 주류계를 강타했던 ‘하이볼’의 원류가 된 바로 그 위스키다. ‘하이볼(Highball)’은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스피릿)를 탄산수를 섞고 얼음을 넣은 칵테일의 하나이다. 재료가 간단해 만들기 쉽고 마시기도 쉬운 이 칵테일은 특히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중심에 가쿠빈이 있다.

  하이볼로 만들었을 때 가장 맛있는 위스키라는 광고가 제대로 먹힌 것인지, 아니면 하이볼 시장을 선점하며 소비자의 입맛을 길들여 버린 덕인지 알 수 없지만, 가쿠빈은 품귀 현상이 생길 정도로 팔려나갔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최소 2배 이상의 가격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꼭 사와야 하는 아이템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M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일본 편의점, 드럭 스토어, 슈퍼마켓을 들러 술 사는 재미를 느꼈다. 한국인이 많이 가는 지역은 가쿠빈이 일찌감치 다 털렸고, 소도시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하이볼이 인기를 끌면서 어느 순간 탄산수가 혼합된 술과 음료에는 죄다 ‘하이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위스키 회사에서는 자사의 제품을 하이볼 소비 시장에 밀어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편의점에 캔 하이볼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논알코올 위스키’는 처음부터 아예 하이볼용으로 설계되었다. 사실, 술을 못 마시게 된 이후 위스키가 생각나는 경우는 역시 하이볼이었다. 톡 쏘는 탄산 뒤로 은은한 오크향과 바닐라향이 올라오는 하이볼이 종종 그리웠던 것이다.  


  영국 크로쉽(Crossip)에서 만든 ‘댄디스모크(Dandy Smoke)’는 논알코올러를 위한 하이볼용 스피릿이다. 즉, 스트레이트나 언더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걸 모른 상태에서 맛을 보곤 깜짝 놀랐다. 익숙한 오크향이 아닌, 스모키한 솔향이 진하게 느껴졌고 목으로 넘기자 생강, 고추 같은 알싸한 풍미가 강하게 올라왔다. 마치 고도수의 스피릿을 맛과 향으로 대체해 구현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여기에 탄산수와 얼음을 더하자 그제서야 익숙한 맛이 떠올랐다. 진저 하이볼이다. 또는 분다버그 진저 비어에 솔의눈을 더하면 이런 맛일 것 같기도 하다. 탄산수 대신 콜라와 섞으면 잭콕 같은 맛이 난다고 한다. 논알코올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색다른 칵테일로 즐길 만한 베이스다.



  좀 더 접근이 쉬운 논알코올 하이볼 레시피도 있다. ‘위스키 시럽’을 이용하는 것이다. 위스키 시럽은 1% 미만이지만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다. 오크칩을 넣어 가향하는 방식으로 위스키를 제조하기도 하니 상상하기 어려운 맛은 아니다. 카페나 바에서 ‘논알코올 하이볼’이라는 메뉴를 발견한다면 이 레시피일 가능성이 높다.


  올해 들어서 M은 더 이상 산토리 위스키 가쿠빈의 구매를 부탁하지 않는다. 충분히 즐긴 모양이다. 

  유행은 또 그렇게 지나간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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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