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동네 주점에 간다.
저녁밥 차리기도 귀찮고, 슬쩍 술도 하고 싶으면 그만한 곳이 없다. 메인 안주 하나에 사이드 하나, 생맥주에 조금 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소주 한 병 시켜 반 병 정도 마시면 이과장(남편)이랑 나랑 딱이다. 주점이라는 곳도 요즘엔 귀하다. 옛날 말로 치면 소주방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바이브를 즐기기보다 정말 소주와 맥주를 좀 먹겠다는 마음으로 갈만한 곳이 드물다는 말이다.
노포는 노포대로, 일본풍은 일본풍대로 벼르고 별러 콘셉트에 진심인 곳이 많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자기 주장이 강한 가게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음식이나 술 맛이나, 인테리어, 서비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일일이 감탄하고 평하기보다는 그저 하루의 피로를 털고 싶을 뿐인데.
동네에 소주를 마시러 가는 곳은 딱 세 곳.
오늘은 그 중 하나인 경성상회 공덕역점에 왔다(나머지 두 곳은 차차 소개할 기회가 있겠죠?). 이자카야 체인으로 다른 지점은 어떤지 몰라도 여기는 푸짐하고 맛있다. 어느 정도로 맛있냐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 정도로만 맛있는 게 좋다. 거기에 더해 옛날 풍인 이자카야라서 좋다. 마치 일본에 와있는 것만 같이 치밀하게 구현한 공간이 아니라, 한 20년 전에 이자카야라는 곳이 한국에 생기기 시작하던 때 생겨난 그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름만 이자카야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편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신경쓰지 않은 점이 오히려 일본 동네 선술집과 더욱 흡사하다.
이 곳과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 갔는데 서비스가 솔찬히 나왔다. 처음엔 잘못 온 줄 알고 돌려보냈는데, 사장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그래서 사장님께 직접 인사 드리러 가니, 나더러 예전 가게부터 단골이시지 않느냐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말로 사장님과 일면식이 없어서, 처음 뵙는다고 말씀드렸더니 ‘다 안다, 괜찮다.’고 눈짓으로 말하고는 맛있게 먹으라 하셨다. 도대체 누구와 헷갈리셨던 걸까? 그 다음부터는 거리감을 두려는 건지, 역시 아닌가 했던 건지 먼저 알은 척을 하지는 않으셨다. 수년이 지난 지금 굳이 그 일을 되물을 것까지는 아니어서 나로서는 약간의 미스터리가 이 가게에 묘미를 더해준다.
아무튼 느슨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나뿐은 아닌 듯, 이곳은 동네의 직장인부터 젊은이들까지 언제나 북적하다. 모두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채로 술을 마시고 있다. 마치 마음의 벨트를 푼 채로 술을 마신다고 해야 하나. 이런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해방감이 있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또 이만한 시장조사도 없다. 연령대나 성별별로 어떤 술을 마시고 있나, 스윽 둘러본다.
“뭐지?”
기묘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외마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테이블에 투명한 하얀 병이 올려져 있다. 모두 새로를 마시고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 오기 전에 새로 판촉팀이 왔다 갔나요?” 알바생은 이 일을 하면서 별별 인간 군상을 만나봤지만 너 같은 건 처음이다 라는 표정으로 답한다.
“아니요”
롯데의 새로가 제로 슈거 소주의 시장을 열었다. 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소주에는 원래 비용 때문에라도 대체당이 들어가지, 과당이나 설탕은 거의 안들어갈텐데?’했지만 관련기사는 출시 일 년 반이 지난 얼마 전 쯤에서야 올라오기 시작했다. 경쟁업체에서 당과 관련한 내용으로 견제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잠잠했던 것은 제로 슈거의 시장에 발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지난 주부터 ‘제로소주의 배신’이라는 키워드로 다소 강렬한 타이틀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별다른 타격은 없는 것 같다. 애초에 허름한 동네 주점에 모여 소주를 먹는 느슨한 술꾼들은, 소주에 당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초록병 일색이던 느슨해진 소주판에 새로울려고 작정한 새로 같은 술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딱 허용 가능한 그 만큼만.
이런 제품이 나오면 나같이 느슨할 대로 느슨해진 술꾼도 이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여기도 새로 한 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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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
가끔 동네 주점에 간다.
저녁밥 차리기도 귀찮고, 슬쩍 술도 하고 싶으면 그만한 곳이 없다. 메인 안주 하나에 사이드 하나, 생맥주에 조금 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소주 한 병 시켜 반 병 정도 마시면 이과장(남편)이랑 나랑 딱이다. 주점이라는 곳도 요즘엔 귀하다. 옛날 말로 치면 소주방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바이브를 즐기기보다 정말 소주와 맥주를 좀 먹겠다는 마음으로 갈만한 곳이 드물다는 말이다.
노포는 노포대로, 일본풍은 일본풍대로 벼르고 별러 콘셉트에 진심인 곳이 많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자기 주장이 강한 가게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음식이나 술 맛이나, 인테리어, 서비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일일이 감탄하고 평하기보다는 그저 하루의 피로를 털고 싶을 뿐인데.
동네에 소주를 마시러 가는 곳은 딱 세 곳.
오늘은 그 중 하나인 경성상회 공덕역점에 왔다(나머지 두 곳은 차차 소개할 기회가 있겠죠?). 이자카야 체인으로 다른 지점은 어떤지 몰라도 여기는 푸짐하고 맛있다. 어느 정도로 맛있냐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 정도로만 맛있는 게 좋다. 거기에 더해 옛날 풍인 이자카야라서 좋다. 마치 일본에 와있는 것만 같이 치밀하게 구현한 공간이 아니라, 한 20년 전에 이자카야라는 곳이 한국에 생기기 시작하던 때 생겨난 그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름만 이자카야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편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신경쓰지 않은 점이 오히려 일본 동네 선술집과 더욱 흡사하다.
이 곳과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오픈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 갔는데 서비스가 솔찬히 나왔다. 처음엔 잘못 온 줄 알고 돌려보냈는데, 사장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그래서 사장님께 직접 인사 드리러 가니, 나더러 예전 가게부터 단골이시지 않느냐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말로 사장님과 일면식이 없어서, 처음 뵙는다고 말씀드렸더니 ‘다 안다, 괜찮다.’고 눈짓으로 말하고는 맛있게 먹으라 하셨다. 도대체 누구와 헷갈리셨던 걸까? 그 다음부터는 거리감을 두려는 건지, 역시 아닌가 했던 건지 먼저 알은 척을 하지는 않으셨다. 수년이 지난 지금 굳이 그 일을 되물을 것까지는 아니어서 나로서는 약간의 미스터리가 이 가게에 묘미를 더해준다.
아무튼 느슨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나뿐은 아닌 듯, 이곳은 동네의 직장인부터 젊은이들까지 언제나 북적하다. 모두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채로 술을 마시고 있다. 마치 마음의 벨트를 푼 채로 술을 마신다고 해야 하나. 이런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해방감이 있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또 이만한 시장조사도 없다. 연령대나 성별별로 어떤 술을 마시고 있나, 스윽 둘러본다.
“뭐지?”
기묘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외마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테이블에 투명한 하얀 병이 올려져 있다. 모두 새로를 마시고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 오기 전에 새로 판촉팀이 왔다 갔나요?” 알바생은 이 일을 하면서 별별 인간 군상을 만나봤지만 너 같은 건 처음이다 라는 표정으로 답한다.
“아니요”
롯데의 새로가 제로 슈거 소주의 시장을 열었다. 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소주에는 원래 비용 때문에라도 대체당이 들어가지, 과당이나 설탕은 거의 안들어갈텐데?’했지만 관련기사는 출시 일 년 반이 지난 얼마 전 쯤에서야 올라오기 시작했다. 경쟁업체에서 당과 관련한 내용으로 견제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잠잠했던 것은 제로 슈거의 시장에 발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지난 주부터 ‘제로소주의 배신’이라는 키워드로 다소 강렬한 타이틀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별다른 타격은 없는 것 같다. 애초에 허름한 동네 주점에 모여 소주를 먹는 느슨한 술꾼들은, 소주에 당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초록병 일색이던 느슨해진 소주판에 새로울려고 작정한 새로 같은 술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딱 허용 가능한 그 만큼만.
이런 제품이 나오면 나같이 느슨할 대로 느슨해진 술꾼도 이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여기도 새로 한 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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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