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abitostay
마지막 날 아침, 과음과 피로에 안색이 어두운 몇몇이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아침 식사는 여전히 건강하고 맛있다. 이른 아침의 하늘은 깨질 듯 맑고, 적당히 냉랭하면서 투명한 공기가 온몸을 상쾌하게 씻어 내렸다. 오늘의 첫 번째 일과는 어제의 덧술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뻑뻑했던 고두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온도를 점검하고 발효를 돕는 이스트를 넣어주었다. 오늘의 테마는 발효다. 본격적인 코지(누룩) 공부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코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영상을 통해 감을 잡고 실제 코지를 위한 쌀과 코지를 실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 술에 사용하는 코지는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한국의 누룩과 달리 배양된 균을 사용한다. 그래서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데 유리하고, 균을 다양하게 조작해 여러가지 맛과 향을 구현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 전역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포도향, 바나나향 등 첨가물 없이도 코지만으로 과일향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이 코지 균은 굉장히 예민하고 연약해 다른 곰팡이 균에게 쉽게 잠식된다고 한다. 그래서 작업 전 양조장 직원들은 다른 균이 옮겨 올까봐 극도로 조심하게 되는데, 혹시 모르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김치, 낫또 등 발효식품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kurabitostay
이제 직접 코지를 영접하러 갈 차례가 되었다. 99.9%를 살균한다는 오존수에 손을 10초간 담가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세균까지 완전히 박멸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혹독했다. 얼어 있지 않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굉장히 차가워서 10초를 버티는 것 자체가 꽤나 큰 도전이었다.
깨끗한 손을 조심스럽게 모시고 코지용 쌀을 점검하러 간다. 테이블 위에 놓인 쌀들을 꼼꼼히 살피며 불순물을 걸러 내는 작업이었다. 일일이 쌀알의 틈을 헤집으며 작은 먼지 하나까지도 찾아내는 정성 가득한 일이었다.
마지막은 대망의 코지 만들기였다.
작업장은 무척이나 더웠다. 들어오기 전부터 더우니까 겉옷을 탈의하라고 안내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두밥을 넓은 테이블에 고르게 펼쳐 놓으면 그 위로 코지 균을 골고루 뿌려준다. 이 순간은 균사가 대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작업자를 제외하고는 절대 움직이면 안된다. 몇 분에 불과했지만 미동하지 않고 열기를 참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졸음에 맞서는 강렬한 의지를 오롯이 발효를 향한 숭고한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시간이었다.
균이 어느 정도 안착되었다 싶으면 반죽하듯 고두밥을 골고루 섞고 다시 원래대로 펴준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는데, 끝날 때 즈음엔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나오자 모든 일정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후련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뒤엉키며 밀려들었다. 업무가 종료됐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최종 테스트와 수료식에 참여하러 간다.
ⓒkurabitostay
지금까지 배운 전 과정에 대한 퀴즈를 푸는데 1등에겐 상품이 주어진다. 아, 일본분들도 계시는데 내가 1등을 해도 되나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에 송구한 심정이었지만 기우는 세 번째 문제에서 이미 후지산 구름으로 증발해 버렸다. 다들 열심히 공부했는지 생존자가 많았고, 문제의 난이도는 광기에 가까워졌다. 결국 승패를 가른 건 대표님의 동생 이름이 무엇이냐는 충격적인 질문에서였다. 본의 아니게 양조장의 호구 조사까지 진행된 후 테스트가 끝났다.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가 한 명 한 명에게 수료증이 전달되었다.
우리가 주물렀던(!) 재료들로 만들어진 술은 숙성과정을 거쳐 몇 달 후 한 병씩 집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추억이 적당히 발효했을 때 상큼한 기분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kurabitostay
만남과 헤어짐이 으레 그렇듯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대한 기약은 불투명하고 실현되기 어렵다는 건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여행자의 작별 인사니까. 돌아오는 길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조금 더 따뜻해져 있었고, 기차의 창 밖으론 봄이 오고 있었다. 끝.nurukers
👉영상보기
--
글: 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
ⓒkurabitostay
마지막 날 아침, 과음과 피로에 안색이 어두운 몇몇이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아침 식사는 여전히 건강하고 맛있다. 이른 아침의 하늘은 깨질 듯 맑고, 적당히 냉랭하면서 투명한 공기가 온몸을 상쾌하게 씻어 내렸다. 오늘의 첫 번째 일과는 어제의 덧술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뻑뻑했던 고두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온도를 점검하고 발효를 돕는 이스트를 넣어주었다. 오늘의 테마는 발효다. 본격적인 코지(누룩) 공부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코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영상을 통해 감을 잡고 실제 코지를 위한 쌀과 코지를 실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 술에 사용하는 코지는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한국의 누룩과 달리 배양된 균을 사용한다. 그래서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데 유리하고, 균을 다양하게 조작해 여러가지 맛과 향을 구현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 전역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포도향, 바나나향 등 첨가물 없이도 코지만으로 과일향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이 코지 균은 굉장히 예민하고 연약해 다른 곰팡이 균에게 쉽게 잠식된다고 한다. 그래서 작업 전 양조장 직원들은 다른 균이 옮겨 올까봐 극도로 조심하게 되는데, 혹시 모르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김치, 낫또 등 발효식품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kurabitostay
이제 직접 코지를 영접하러 갈 차례가 되었다. 99.9%를 살균한다는 오존수에 손을 10초간 담가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세균까지 완전히 박멸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혹독했다. 얼어 있지 않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굉장히 차가워서 10초를 버티는 것 자체가 꽤나 큰 도전이었다.
깨끗한 손을 조심스럽게 모시고 코지용 쌀을 점검하러 간다. 테이블 위에 놓인 쌀들을 꼼꼼히 살피며 불순물을 걸러 내는 작업이었다. 일일이 쌀알의 틈을 헤집으며 작은 먼지 하나까지도 찾아내는 정성 가득한 일이었다.
마지막은 대망의 코지 만들기였다.
작업장은 무척이나 더웠다. 들어오기 전부터 더우니까 겉옷을 탈의하라고 안내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두밥을 넓은 테이블에 고르게 펼쳐 놓으면 그 위로 코지 균을 골고루 뿌려준다. 이 순간은 균사가 대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작업자를 제외하고는 절대 움직이면 안된다. 몇 분에 불과했지만 미동하지 않고 열기를 참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졸음에 맞서는 강렬한 의지를 오롯이 발효를 향한 숭고한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시간이었다.
균이 어느 정도 안착되었다 싶으면 반죽하듯 고두밥을 골고루 섞고 다시 원래대로 펴준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는데, 끝날 때 즈음엔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나오자 모든 일정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후련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뒤엉키며 밀려들었다. 업무가 종료됐음을 알리는 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최종 테스트와 수료식에 참여하러 간다.
ⓒkurabitostay
지금까지 배운 전 과정에 대한 퀴즈를 푸는데 1등에겐 상품이 주어진다. 아, 일본분들도 계시는데 내가 1등을 해도 되나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에 송구한 심정이었지만 기우는 세 번째 문제에서 이미 후지산 구름으로 증발해 버렸다. 다들 열심히 공부했는지 생존자가 많았고, 문제의 난이도는 광기에 가까워졌다. 결국 승패를 가른 건 대표님의 동생 이름이 무엇이냐는 충격적인 질문에서였다. 본의 아니게 양조장의 호구 조사까지 진행된 후 테스트가 끝났다.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가 한 명 한 명에게 수료증이 전달되었다.
우리가 주물렀던(!) 재료들로 만들어진 술은 숙성과정을 거쳐 몇 달 후 한 병씩 집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추억이 적당히 발효했을 때 상큼한 기분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kurabitostay
만남과 헤어짐이 으레 그렇듯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대한 기약은 불투명하고 실현되기 어렵다는 건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여행자의 작별 인사니까. 돌아오는 길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조금 더 따뜻해져 있었고, 기차의 창 밖으론 봄이 오고 있었다. 끝.nurukers
👉영상보기
--
글: 진병우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살아간다. 광범위한 관심사 탓에 에너지 소모량이 높아 가끔 낮에도 방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