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사의 퇴근주]정신차려보니 50캔 째 : 아사히 쇼쿠사이 리츄얼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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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두절미하고 제목 그대로다. 요즘 제일 자주 먹는 술은 아사히 쇼쿠사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지껏 남편과 50캔 정도 사 먹은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고 하면, 딱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정작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 캔은 사 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것보다 이게 낫더라, 하는 비교 우위도 아니다. 먼저 출시된 아사히 생맥주 캔을 먹지 않은 데에는 이상하게 심사가 꼬인 반골기질도 한 몫했다. 어디에서나 품절이고, 모두가 SNS에 인증할 때 ‘흠’하고 팔짱끼고 일단 구경만 하는 그런 이상한 심보. 

  그렇다고 이게 내 못난 기질 탓만은 아니다. 요즘 들어 편의점에서 사 먹는 일본 맥주들의 맛이 들쭉날쭉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룡기업에서 만드는 맥주들은 맛이 일정하리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술은 합성음료가 아니라 술이다. 제 아무리 대량생산이라 하더라도 술은 사람과 시간과 자연이 만든다. 제품이 만들어지고 고객의 입에 들어갈 때까지 수많은 변인이 존재한다는 뜻.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정말 맛있고, 어떤 때는 영 시원찮다. 

  여기서 편의점 맥주 고르는 양조사의 Tip 하나 가봅니다. 

  4캔 세팅이라면 그럭저럭 끌리는 조합으로 다 다른 술을 고릅니다. 그 중에 유독 맛있는 맥주가 있다면, 한동안은 거기에 눕습니다. 일단 그 시점에서는 전 과정이 베스트 컨디션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먹다가 맛이 틀어지기 시작한다면, 다시 새로운 4캔 조합을 짜봅니다. 이후의 과정은 같습니다. 적고 보니 너무 술고래같은 팁이네요. 하지만 누군가에겐 유용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아사히 쇼쿠사이는 50캔 먹을 동안 틀어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50캔을 먹는데 걸린 시간이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한 번 먹으면 보통 각자 2캔씩 먹어 4캔씩 소진된다. 먹기 시작한 이후로 아사히 쇼쿠사이는 냉장고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맛있긴 맛있다. 프랑스 프리미엄 홉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홉 향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홉 향이 맛을 단정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 좋다. 오리지널보다 홉 향이 좀 더 느껴진다고 한다.  食彩 쇼쿠사이라는 이름은 음식에 색채를 더한다는 뜻으로, 과연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약간 더 달콤한 맛에 홉의 알싸함이 미량의 와사비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탄산도 조밀하고 끝까지 쫀쫀한 편. 그렇다고 “그렇게 맛있냐!”하면 그건 또 모르겠다. 그럼 과연 왜 우리 부부는 이 맥주가 냉장고에 떨어져 가면 분리불안을 느낄 만큼 집착하는 걸까. 여지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쇼쿠사이를 먹는 과정을 복기 해본다. 

  일단 이마트에서 사온다. 이마트에서는 4캔 9900원으로 퍽 합리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구매를 결정한 것도 가격 때문이었다. 더불어 디자인도 호들갑스럽지 않아 ‘흠,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집었다.  

  6시간 냉장고에 넣었다 먹으라는 지침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 넣는다. 2살배기 딸래미를 돌보며 집을 정리하고, 저녁을 차리고, 조금 놀아주다 아기를 재우면 밤 9시30분.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남편과 함께 방에서 살금살금 나온다.  자는 척 누워있느라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한 번 하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을 30분 정도 함께 한다. 그럼 이제 10시. 

  IT’S SHOKUSAI TIME! 

  안주는 별스럽지 않게 준비한다. 남은 반찬이나 양배추절임, 먹다남은 과자로도 충분. 없어도 괜찮다. 냉장고에서 쇼쿠사이를 꺼내와 자리에 앉고, 남편과 눈빛으로 싸인을 맞춘 뒤 쇼쿠사이 뚜껑을 동시에 깐다. 

  “챸캉!” 

  이 뚜껑은 도무지 조용히 열 수가 없다. 잽싸게 탄산이 잘 올라오게 하기 위해 양손으로 쇼쿠사이 캔을 감싼다. 싸늘하다. 손바닥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차가운 캔의 온도가 손바닥에 저미듯 전해지는 걸 느끼며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이 소리에 딸래미가 잠에서 깨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고요하다. 적막을 깬 날카로운 금속음이 환희의 축포소리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고 건배를 한다. 긴장감으로 깔깔했던 입안에 쇼쿠사이가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깨달았다. 食彩 쇼쿠사이는 음식에 색채를 더하는 것을 넘어, 우리 부부의 하루를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었구나.


  리츄얼 Ritual 은 의식儀式 이라는 뜻이다. 성스럽거나 종교적인 제의를 뜻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행하는 행위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는 쇼쿠사이 Ritual을 행해온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제품은 이렇게 설계 됐다. 품절이 자주 뜨기 때문에 눈에 보이면 일단 사야한다. 제조사 지침대로 6시간 냉장고에 넣은 후, 캔을 오픈하는 소리는 청각을, 양손으로 캔을 잡는 행위는 촉각을 자극한다. 시각적으로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 한 후, 입에 넣어 미각을 깨운다. 

  이렇게 욕망과 오감을 자극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술이고, 우리는 이 리추얼을 충실히 이행하며 쇼쿠사이 신도로 거듭나버렸다. 신병철 작가의 <리츄얼>이라는 책에서는 생각이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생각을 바꾼다고 한다. 뇌신경이 자극되어 태도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쇼쿠사이 리츄얼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단 하나는 분명히 알겠다. 


  오늘 밤도 쇼쿠사이를 마실 거라는 사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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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쁜꽃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