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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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밤, 몸에 이상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징후가 있었는데 설마 하며 무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 방법과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일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다. 석 달 간의 금주 후 처음 술을 마셨는데 급격히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 몸으로 술을 거부한다고 느껴졌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술을 꽤 잘 마시는 축에 속했다. 타고난 면도 있고 대학 전공과 첫 직장이 모두 술과 친밀한 곳이었기에 본격적으로 음주를 시작하는 20대에 실력을 갈고 닦을 기회도 잦았다. 술을 잘 마시기도 했지만 좋아했다. 처음에는 와인에 관심이 생겼다. 뭔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일단 책부터 사는지라, 두어 권을 탐독한 후 책에 소개된 와인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하나씩 사서 마셔봤다. 와인 시음회에도 참석했다. 소믈리에가 와인의 산지와 특징을 설명해주고 시음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만의 취향을 파악했고 거기에 맞는 와인 고르는 법을 습득했다.


  그 다음엔 크래프트 맥주에 빠졌다. 한국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가 급물살을 타던 시기였다. 맥주 축제나 펍 크롤링 투어를 다니며 한국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여행을 좋아하는 K를 꼬드겨 지역 브루어리 여행을 떠났다. K는 크래프트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가서 홀딱 반한 후 모든 일정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다. 충북 음성, 울산, 부산, 양양 등에 자리한 맥주 브루어리를 찾아 다니면서 어느새 K도 이 집 맥주가 자기 입맛에 맞는다느니, 축제 때 먹었던 것에 비해 맛이 어떻다느니 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  


ⓒ이정선 ⓐnurukers


  전통주에 관한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땐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술과 여행, 인터뷰를 하나로 엮어 내는 작업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50곳의 양조장을 돌았고, 시음하라며 건넨 술을 넙죽넙죽 다 받아 마셔 양조장 사장님들을 기쁘게 한 것은 덤이다. 


  수술은 <술술술술-전국 술도가 50 유랑기> 책이 나온 그 해 여름에 했다. 수술 후 6개월, 1년이 지나도록 예전 주량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만 많이 마셔도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 감각이 너무 싫어서 자연스레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술이 없는 밤은 너무 길었다. 낮술이 빠진 일상은 지루했다. 마트나 편의점을 가는 재미가 줄었다. 아니, 다 치우고 삼겹살을 술 없이 대체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이정선 ⓐnurukers


  인생의 즐거움 하나를 잃었다고 여길 즈음, 같은 동네에 사는 C가 논알콜 맥주를 먹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C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아는 최고의 주당이었다. 건강 검진에서 안 좋은 소견을 듣게 되어 금주 중인데 논알콜 맥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맥주도 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마시지 않던 C가 논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아니, 그보다 논알콜 맥주로 대체가 된다고? 그때부터 새로운 길이 열렸다.


  와인, 크래프트 맥주, 전통주를 지나 아마도 위스키로 향했을 술의 여정은 크게 각도를 틀었다. 이 이야기는 ‘이것도 술이냐’며 무시하던 이가 새로운 술의 세계를 만나게 된 여정이다. 전문적이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무언가를 좋아하던 사람이 더 이상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취향과 관심을 잃지 않고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자 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과 공감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nuru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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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20대는 잡지를 만들며 보냈고, 30대는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보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지만 잘하는 일은 의미를 발견하고 엮어내는 기획과 설계라고 생각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며 제주에서 살고 있다.